시읽는기쁨

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샌. 2019. 11. 28. 22:09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다시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 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이 물을 마시는 이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은 옳다. 영혼의 측면에서 인간은 갈증을 느끼는 존재다. 물은 잠시의 해갈일 뿐 다시 갈증이 찾아온다. 잘못 소금물을 마신다 기갈에 더 시달릴 뿐이다. 방황하고 떠도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지 모른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이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줄 물은 오히려 그 사람 안에서 샘이 되고 그 물은 솟아올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길, 진리, 생명'이라고 선언하셨다. 그 예수 안에서 길을 찾았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길은 수없이 많다. 막막한 그리움을 안고 노래 부르며 떠도는 자도 하나의 길이다. 굽이굽이 고개 넘고 산길 걸어 부르튼 발 주무르며 쉬는 저녁, 해가 서산으로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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