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바위에 홀로 앉았노라니
계곡물 소리에 가슴 시리네
고요한 풍광 눈부시게 아름답고
안개 속에 희미하게 바위 드러나네
편안한 마음으로 쉬노라니
지는 해에 나무 그림자 낮아졌네
내 스스로 마음자리 들여다보니
흙탕물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네
盤陀石上坐
谿澗冷凄凄
靜玩偏嘉麗
虛巖蒙霧迷
恰然憩歇處
日斜樹影低
我自觀心地
蓮花出於泥
- 寒山
가을이 짙어가는 시절에 한산의 시를 읽는다. 한산이 듣던 천태산(天台山)의 맑은 계곡물 소리에 귀 기울인다. 물욕에 찌든 이 검은 속내를 조금이나마 씻어가 주길 기대하면서. 나는 언제쯤 구차한 자리 훌훌 털고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으리. 제 마음자리 들여다보며 '흙탕물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네'라고 노래할 수 있으리.
한산은 다른 시에서 자신을 이렇게 드러냈다.
吾心似秋月
碧潭淸皎潔
내 마음 밝기가 가을달이요
깨끗하긴 연못의 물과 같구나
한산은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러하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런 자신감과 천진난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구하고 바라야 할 게 더 무엇이 있으리. 눈 돌리면 온 산야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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