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칠십까지 살아내기가 여의치 않았던 시절
그 나이라면 가르칠 일도 깨우칠 것도 없었겠다.
나이 오십에 하늘의 뜻을 다 알아차려야 한다 했으니
그 문턱 넘은 뒤로는
다만 제각기 붙은 자리에서
순서대로 순해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귀가 순해지는 이순耳順에 앞서
쉰다섯 즈음엔 입이 순해지는 구순口順이어야 지당하고
귀와 입이 양순해진 다음에는 눈의 착함이 순서란 말이지
예순 다섯 안순眼順은
세상으로 향하는 눈이 너그러워질 때.
입과 귀와 눈이 일제히 말랑말랑해지면
좌뇌 우뇌 다 맑아져서 복장 또한 편해지겠거늘
아직도 주둥이는 달싹달싹
귓속은 가렵고 눈은 그렁그렁
찻잔 속 들여다보며 간장종지만 달그락대고 있으니.
- 논어 새로 읽기 / 권순진
어제 <논어> 읽기를 마쳤다. 무려 7년이 걸렸다. <논어>를 다시 읽은 계기는 2012년 여름에 공자의 고향인 곡부에 다녀오면서였다. 현장에 가서 보니 공자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새롭게 공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 바로 <논어> 읽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논어>를 읽는 동안 나를 사로잡은 화두였다. 해답을 찾기 위함이 아니었다. 질문을 잊지 않기 위해 <논어>를 읽었다는 말이 옳겠다. 질문은 질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인생길은 걸어가는 발걸음에 의미가 있는 것과 같다. 해답은 환상이고, 목적지는 허상일 뿐이다.
<논어> 읽기를 끝낸 기념으로 자축주를 했다. 긴 기간 <논어>를 붙들고 있었음에 뿌듯해하며 자뻑에 빠졌다. "조무래기들!"이라고 큰소리친 건 순전히 술기운 탓이었다. 하늘이 허락해서 망구(望九)까지 살 수 있다면 다시 <논어>를 읽어보고 싶다. 그때가 되면 공자의 말씀을 좀 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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