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
- 하늘 / 박두진
박두진 시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다. 박두진 문학길을 걸으며 이 시를 찾아 읊었다. 요사이는 휴대폰이 있으니 편리하다. 젊었을 때 무척 좋아했던 시였는데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음을 새삼 알아챘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호수를 따라 오붓하게 길이 나 있었다. 시인이 말하는 호수를 여기 금광호수로 착각한들 어떠랴. 호수는 지상의 꿈, 하늘은 천상의 신비가 아니겠는가. 호수와 하늘과 시인이 하나가 되어 아름답게 익어가는 가을이다.
시인은 청년기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평생을 신앙 안에서 살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시에 나오는 '하늘'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선비로 살아간 시인은 이 시대 신앙인의 사표가 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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