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복권 가게 앞에서 / 박상천

샌. 2019. 10. 8. 19:29

아이와 함께 길을 걷다가

문득 복권이 사고 싶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잠시 망설인다.

 

복권을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긴 싫어

꾸욱 참고 가게 앞을 그냥 지나쳐 간다.

자꾸만 호주머니에 손이 가지만

아이에게 변명할 말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내 행동을 이해하도록 설명해주어야 할만큼

아이가 자라고 나니

이제 나는

복권을 사고 싶은 나이,

참 쓸쓸하고 허전한 나이에 이르고 말았다.

 

- 복권 가게 앞에서 / 박상천

 

 

집으로 오는 길목에 복권 가게가 새로 생겼다. 몇 번 지나치다가 어제는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 남자가 앉아있다가 반갑게 맞는다. 언제 개업했느냐고 물으니, 그동안 세 번 추첨했는데 5만 원짜리 당첨이 여러 번 나왔다고 자랑한다. 고작 5만 원이냐고 반문하니 그것도 쉽지 않단다. 6개 숫자 중 4개를 맞추어야 한다니, 잠깐만 생각해 봐만만찮은 확률이 틀림없다. 1등 당첨은 도대체 얼마의 확률일까. 나는 1만 원을 주고 작은 종이 두 장을 받았다.

 

로또가 언제 생겼는지 모르지만 직접 사 본 건 처음이다. 그동안은 복권에 관심이 없었고, 복권을 사는 행위를 경멸했다. 로또 하면 요행과 공짜 심리가 우선 떠올랐다. 복권 가게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후줄근해 보인 것도 이유였다. 그런 내가 거리낌 없이 로또를 샀다. 만약 1등에 당첨되면 뭘 할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직 제 소유의 집이 없는 자식에게 아파트를 사 주고 싶다.

 

불황일수록 복권 판매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기댈 게 로또밖에 없는 사회는 얼마나 슬픈가. 통계를 보면 하루에 팔려나가는 로또가 1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낱개로 치면 천만 개의 꿈이 매일 생겨난다는 뜻이다. 쓸쓸하고 허전한 가슴으로 서늘한 가을바람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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