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씨팔!"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씨팔! 확실한 기라예!"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그러다 녀석의 공책을 보고는 배꼽을 잡았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방을 살펴보고 씨앗수를 알아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 공부를 하고
공책에 '씨8'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물음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 씨팔! / 배한봉
<어린 왕자>에 보아뱀 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왕자가 보아뱀이 코끼리를 잡아먹은 그림을 그렸지만, 어른들은 모자 그림이 뭐가 무섭냐고 반문한다. 어른을 이해시키기 위해 어린 왕자는 다시 그림을 그린다. 이 시의 제목만 보고 당황했다면 이미 어른이 된 사람이 아닐까. 이리저리 눈치 보며 잔머리 굴리고, 숫자놀이와 은행 잔고에 신경 쓰며 시간을 허비한다면 정말로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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