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씨팔! / 배한봉

샌. 2019. 9. 18. 11:32

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씨팔!"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씨팔! 확실한 기라예!"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그러다 녀석의 공책을 보고는 배꼽을 잡았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방을 살펴보고 씨앗수를 알아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 공부를 하고

공책에 '씨8'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물음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 씨팔! / 배한봉

 

 

<어린 왕자>에 보아뱀 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왕자가 보아뱀이 코끼리를 잡아먹은 그림을 그렸지만, 어른들은 모자 그림이 뭐가 무섭냐고 반문한다. 어른을 이해시키기 위해 어린 왕자는 다시 그림을 그린다. 이 시의 제목만 보고 당황했다면 이미 어른이 된 사람이 아닐까. 이리저리 눈치 보며 잔머리 굴리고, 숫자놀이와 은행 잔고에 신경 쓰며 시간을 허비한다면 정말로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