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버들가지는 꺾여도 / 신흠

샌. 2019. 12. 15. 15:14

오동나무는 천 년을 묵어도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 춥게 지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이 변하지 않고

버들가지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 신흠(申欽, 1566~1628)

 

 

도산서원에 있는 왕버들을 올린 블로그 글어떤 분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서원에 왜 버드나무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신흠 선생의 이 시에 답이 있다고 알려준 것이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이 시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지내셨다는데, 두 분은 시대가 다르니 퇴계 선생이 알았을 리가 없다. 시가 품고 있는 의미는 짐작하셨을 수 있다. 어쨌든 도산서원의 버드나무는 선비 정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상촌(象村) 신흠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문장이 뛰어난 분이었다. 조선의 4대 문장가로는 정철, 윤선도, 박인로, 신흠이 꼽힌다. 선조의 신임을 받다가 광해군 때는 파직되어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후에 이조판서, 영의정을 지냈다. 선생의 장남이 선조의 셋째 딸 정숙옹주와 결혼할 때 주위에서 누추한 집을 수선하라고 권했지만 집이 좁아도 예를 행하기에는 충분하다며 거절했을 만큼 청렴한 선비였다.

 

신흠 선생의 무덤이 경기도 광주시 퇴촌에 있다. 내 사는 곳에서 가까우니 한 번 찾아갈 날을 잡아야겠다. 너무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서 그래도 우리가 지켜야 할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 고결한 정신의 가치를 이 시에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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