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라' 없는 나라 / 이시영

샌. 2019. 12. 29. 10:28

어디 남태평양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섬은 없을까. 국경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리하여 군대나 경찰은 더욱 없는. 낮에는 바다에 뛰어들어 솟구치는 물고기를 잡고 야자수 아래 통통한 아랫배를 드러내고 낮잠을 자며 이웃 섬에서 닭이 울어도 개의치 않고 제국의 상선들이 다가와도 꿈쩍하지 않을 거야. 그 대신 밤이면 주먹만 한 별들이 떠서 참치들이 흰 배를 뒤집으며 뛰는 고독한 수평선을 오래 비춰줄 거야. 아, 그런 '나라' 없는 나라가 있다면!

 

- '나라' 없는 나라 / 이시영

 

 

선거법과 공수처법 처리를 두고 국회가 시끄럽다. 무한한 권력욕과 제 이익 챙기기밖에 모르는 정치꾼들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언제 아니 그런 적 있었느냐고 나를 달래면서, 시인처럼 '나라' 없는 나라를 꿈꾼다. 쇠붙이와 껍데기의 '나라'는 가고, 평화와 공영의 나라는 오라!

 

요사이 <금강경>을 읽으면서 '나 없는 나'를 붙잡고 있다. '나 없는 나'와 '나라 없는 나라'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환상을 현실로 바꾸어 주는 것은 오로지 정신의 혁명이 아니겠는가. "아, 그런 '나 없는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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