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 선생은 학식만이 아니라 고매한 인품으로 인하여 후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분이시다. 매화를 무척 사랑하셨고, 또 기생 두향과의 러브스토리도 전하고 있는 걸로 보아 선생은 딱딱한 유학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과부가 된 며느리를 개가시켜 줄 정도로 마음이 따스한 인본주의자이기도 했다. 선생은 당쟁만 일삼는 정치판에 별 관심이 없었으며 임금이 여러 번 벼슬을 내렸지만 사양한 경우가 많았다. 풍기군수를 지내던 때는 세 번이나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수리가 되지 않자 짐을 싸서 고향으로 내려가 버리기도 했다. 선생은 고향에서 은둔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자족하신 분이셨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직전 일어나 앉아 자리를 정리하게 하고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라는 당부를 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선생은 거창한 장례를 염려해서 유언을 남기셨다.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고 작은 돌에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새기라는 것이다. ‘늘그막에야 도산에 물러나 숨어산 진성 이공의 묘’라는 뜻이다. 작은 벼슬자리 하나라도 있으면 비석에 새겨 자랑하려는 소인배들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은 벼슬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지 않고 오로지 숨어사는 늙은이로서 알려지길 원했다고 한다.
스스로 지은 묘비명(墓碑銘) 또한 소박한 인간적인 소회로 가득하다. 돌아가시기 나흘 전인 1570년 음력 12월 4일에 조카를 불러서 적게 했다고 전해진다. 선생의 인품이 느껴지는 글이다.
生而大癡 壯而多疾
中何嗜學 晩何叨爵
學求愈邈 爵辭愈嬰
進行之跲 退藏之貞
深慚國恩 亶畏聖言
有山嶷嶷 有水源源
婆娑初服 脫略衆訕
我懷伊阻 我佩誰玩
我思古人 實獲我心
寧知來世 不獲今兮
憂中有樂 樂中有憂
來化悌畵 復何求兮
나면서 어리석고 자라서는 병이 많았네
젊어서는 학문을 좋아하고 늘그막엔 어쩌다가 벼슬길에 들었네
학문의 길은 갈수록 아득하고 벼슬은 마다해도 더욱 내려졌네
나아가기를 어려워하고 물러나 지냈나니
나라 은혜 생각하니 부끄럽고 성현 말씀은 두렵네
산은 높디높고 물은 흐르고 흐르는구나
모든 것 떨쳐버리고 노니르니 세상 비난도 벗어났네
내 생각 남 모르니 내 뜻 누가 즐기랴
옛 분들 생각하니 내 마음 꿰뚫었네
오는 세상엔들 오늘을 알 리 없으랴
근심 가운데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가운데 근심 있네
조화 따라 돌아가노니 또 바랄 것이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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