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이는 ‘나대로’와 ‘함께’를 적절히 조화시키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나대로’를 강조하다 보면 세상과 불화하기 쉽고, ‘함께’에만 매몰되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공허해진다. 좋은 삶이란 자신의 성향에 맞는 둘 사이의 황금비율을 찾아 사는 삶이다.
사람은 성격이나 가치관에 따라 ‘나대로’에 제일가치를 두기도 하고 ‘함께’를 우선시하기도 한다. 나는 아무래도 전자에 속하는 편이다. 그동안 ‘나대로’의 삶을 찾아 열심히 탐구하고 헤매었다. 그러다가 ‘함께’를 무시해서 쓴맛을 톡톡히 보기도 했다. 혼자의 세계로 도망갔지만 인간관계를 무시한 내 식대로는 도리어 고통이었다. 인간은 로빈슨 크루소나 독불장군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실패의 교훈이었다. 그래도 성격은 어쩔 수 없는지 지금도 항상 세상에서의 일탈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인생이 수학공식처럼 단순하거나 확실하지 않다는 걸 안다.
‘나대로’와 ‘함께’는 내 삶에서 계속 고민하며 균형을 맞추어야 할 과제다. 한쪽으로 치우침은 위험하고, 중간 자리는 안온하지만 권태롭다. 둘 사이의 비율을 어떻게 적당히 배분하느냐는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다. ‘나대로’의 욕구를 억제당한다면 아무리 외적 조건이 만족스러워도 내면의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이상사회란 각자가 저대로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다양하게 열려있는 사회를 말하는 게 아닐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살지만 전체적으로 큰 갈등 없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다. 지금 우리처럼 일류대학 가고, 일류직장 잡고, 돈 많이 버는 게 모두의 획일적인 목표가 된 세상과는 다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망의 절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경쟁과 탐욕의 원리에 바탕 한 자기 식대로는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내 삶의 질은 ‘나대로’의 욕구를 얼마만큼 완화하면서 ‘함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나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뜻하는 것처럼 적당히 거리를 두되 너무 떨어져서는 안 되기, 그러나 이 한 몸 처신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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