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시를 쓰며 산다는 것은 / 조기영

샌. 2020. 3. 17. 11:53

시를 쓰던 어느 날 거짓말 한 번 있었습니다. 밥을 먹어야 하겠기에 돈을 벌러 나갔다가 주머니에 돈이 없어 같이 일했던 사람에게 급히 나오느라 지갑을 놓고 나왔으니 이천 원만 빌려 달라 했습니다. 그 돈 빌려 집에 오는 길에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날따라 비조차 내렸습니다. 우산 없이 집으로 오는 길은 이미 어두웠습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스쳐갔습니다. 그러나

 

- 내 안에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하지만 마음이 비어 시를 쓸 수 없게 된다면 더욱 슬픈 일이 될 거야 -

 

이 말 한마디 하고 내게 웃었습니다.

 

- 시를 쓰며 산다는 것은 / 조기영

 

 

조기영, 고민정 커플은 가난한 시인과 여자 아나운서의 결혼으로 화제가 되었다. 시인은 가난했고, 희귀병을 앓고 있었으며, 열한 살이나 연상이었다. "잘 생긴 남자도 있고, 돈 많은 남자도 있지만, 남편은 존경할 수 있는 남자다." 자꾸 달아나려는 시인을 고민정은 일편단심으로 붙잡았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여 선거 운동을 돕다가 청와대 대변인이 되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나운서를 그만둔 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광진을에 출마했다.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와 일전을 벌인다.

 

물신 숭배의 세상에서 아직 이런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 고맙다. '주머니가 빈 것보다 마음이 빈 것이 더욱 슬픈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가난한 시인의 한숨이 들린다. 시인은 아내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걸 극구 만류했다는데, 어쨌든 고민정 후보의 선전과 당선을 기원한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린 봄을 업다 / 박수현  (0) 2020.03.31
비밀번호 / 문현식  (0) 2020.03.23
굴비 / 오탁번  (0) 2020.03.11
벌써 삼월이고 / 정현종  (0) 2020.03.04
바닷가 늙은 집 / 손세실리아  (0) 2020.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