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소재로 사용한 게 흥미롭다. 책 표지에도 우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가에서 책을 뽑을 때 표지 그림이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SF가 아닌 소설에서 우주가 등장하는 것은 드물다. <나는 농담이다>는 초기 화성 탐사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김중혁 작가의 소설이다.
송우영과 이일영이라는 두 남자가 주인공이다. 송우영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인데 어머니가 죽으면서 남긴 편지를 주인(이일영)에게 돌려주려 한다. 이일영은 사고로 우주 미아가 된 상태다. 통신이 두절되고 산소가 점점 희박해져 가는 가운데 관제센터를 향해 메시지를 남긴다. 송우영과 이일영은 어머니가 같지만 아버지는 다른 형제다.
<나는 농담이다>는 싱겁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등장하는 인물도 희한하다고 해야 할까, 뚜렷한 색깔이나 개성이 없이 흐릿하다.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도 마찬가지다. 젊은 작가가 쓰는 소설의 새로운 경향인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세대는 공감하기 어렵다.
고립된 우주에서 최후를 맞으며 메시지를 발신하는 이일영이 등장하는 대목이 제일 관심을 끌었다. 그 부분은 마치 어두운 우주처럼 종이도 새까맣게 되어 있어 좋은 아이디어로 보였다. 이일영의 처지는 절대 고독과 죽음이라는 극한의 실존적 상황이다. 좀 더 절박하면서 인간 내면의 심층에서 솟구치는 아우성을 기대했는데 이일영은 너무나 침착하고 태평하다. 기대를 비틀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주와 지상을 연결하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은 인정해야겠다. 책에는 송우영의 스탠드업 코미디가 상당한 분량으로 나온다. 작가는 우리 인생이 한 편의 코미디쯤으로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인생은 허허 웃어버리고 말 농담 같은 것인지 모른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생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인상적인 대목은 둘이다. 하나는, 송우영이 코미디의 결론 부분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열 받지 마,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어." 여러분도 한번 해 보세요. 사는 게 의미가 있어요? 아니면 의미가 없어요? 입 닥치세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이에요. 사는 건 당연히 의미가 있죠. 백 퍼센트 의미가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야 의미가 생깁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의미가 없어져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남자분들은 다들 잘 알 거예요. 발기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발기는 물 건너 갑니다. 발기란 건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겁니다. 발기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는 건 발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예쁜 여자가 지나갈 때 이런 생각합니까? '오, 이제부터 흥분해 봐야겠어. 발기를 시도해 봐야지.' 발기는 소리 없이 우리를 덮치는 법이에요."
다른 하나는, 이일영이 지구로 보내는 메시지 중 하나다. 우주의 극단적 환경이 이일영에게 초월적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관제 센터, 들리나?
여긴 우주 한가운데다. 우주선 밖으로 나왔다. 이상한 말이지만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 여긴 빛도 없고, 소리도 없고, 중력도 없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조용하다. 아무리 달려도 어디로도 닿지 못할 것이다. 우주정거장에서도 유영해 봤지만 기분이 완전 다르다. 그냥 완벽한 어둠 속에서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정말 굉장하다. 내가 없어지는 것 같다. 이대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꿈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꿈보다 더 꿈 같다. 거리 감각도, 공간 감각도, 모두 사라진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위치가 소용없어진다. 나는 그냥 호흡 속에 있는 것 같다. 물결 속에 들어 있는 물결 같다. 구름 속에서 흘러가는 구름 같다. 어딘가의 내부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있다. 설명할 길이 없다. 관제 센터, 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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