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레마르크의 전쟁소설이다. 독일의 고등학생이었던 파울 보이머는 담임 선생의 권유로 반 친구들과 함께 자원입대한다. 10주 훈련을 마치고 곧바로 독일과 프랑스군이 참호전을 벌이고 있던 서부 전선에 배치된다. 애국심에 불타서 군인이 되었지만, 소년들이 감당하기에 전쟁터는 너무나 잔인하고 처절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친구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파울은 전쟁의 무의함과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몬 권력자들의 기만과 허위의식을 알아가며 분노한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을 참혹함을 고발하는 소설이다. 극한 상황에 내몰린 병사들은 인간성이 파괴되고 싸우는 기계가 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적을 죽여야 한다. 그런 지옥에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전우애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소설은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전쟁의 실상을 냉정하면서 사실적으로 그린다. 레마르크는 실제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이 이 소설에 녹아 있을 것이다.
참호전과 돌격전으로 알려진 1차세계대전은 대규모의 살육전이었다. 5년간의 전쟁에서 무려 2천만 명이 죽었다. 지휘관은 병사들을 무모하게 기관총 앞으로 내몰았다. 이유도 모른 채 개죽음을 당한 젊은이가 얼마였을까.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이해되지 않는 전쟁이다.
독일 병사의 입장에서 썼지만 소설은 프랑스군 역시 같은 피해자라고 병사의 입을 통해 말한다. 독일군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왔듯 프랑스군 역시 같은 이유에서 총칼을 들었다. 어느 날 육박전의 와중에서 구덩이에 숨어 있던 파울은 뛰어들어온 프랑스 병사를 단검으로 살해한다. 서서히 죽어가는 프랑스 병사를 보며 파울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한다.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병사들은 전쟁이란 괴물에 상처 입은 동지이며 피해자인 것이다.
파울 역시 마지막에는 죽는다. 소설은 이렇게 담담하게 묘사하며 끝낸다.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소설이 너무 가슴을 울려 유튜브에서 영화를 찾아보았다. 1979년에 나온 영화가 올려져 있는데, 한글 자막이 없었다. 그러나 금방 소설을 읽은 탓에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은 소설과 달리 감성적으로 그려져 있으면서 한층 더 충격적이다. 파울은 신병들을 격려하며 참호에서 전투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포탄 세례를 받은 땅에는 줄기만 남은 죽은 나무 몇 그루만 있을 뿐이었다. 파울은 수첩을 꺼내 새를 스케치한다. 그러다가 새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머리를 들다가 탕, 하는 총소리가 울리고 파울은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