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에 홍상수 감독이 '도망친 여자'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이 화려한 불꽃놀이를 펼쳐보인 뒤라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한국 감독이 연이어 유수의 세계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사실은 기쁜 일이다. 그래서 홍 감독의 2015년 작품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올레TV에서 찾아 감상했다.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단박에 느껴졌다. 영화를 만들 때는 이미 김민희 배우와 사랑에 빠졌던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남자 주인공의 직업도 영화감독이다. 두 사람은 대중의 비난이 거세 공개적인 행보를 못 하고 있다. 나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하여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뒤처리가 매끄러웠다면 소송까지 가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안 보였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만한 나이라면 좀 더 원숙한 태도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민희 배우는 영화 '아가씨'에서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여배우다. 이 영화에서의 역할도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한 것 같으면서도 ~한 것 같지 않은, 참으로 모호한 캐릭터다. 그래선지 이 영화 자체도 관객을 헷갈리게 만든다. 분명하게 잡히는 게 없다.
영화의 구성도 특이하다. 같은 시추에이션을 반복하는 1부와 2부로 되어 있다. 둘의 진행 사이에는 에피소드의 차이가 있고, 결과도 다르게 나온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3부, 4부 등 무수한 상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걸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감독이 심각하게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작은 우연의 누적으로 일어난다. 길에서 반지 하나를 줍고 안 줍고의 차이도 감정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 좋아하는 것과 검은 속마음을 얼마나 구분해 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인생은 가벼운 농담 같은 것이라고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감독 자신이 만난 사랑도 운명적이라고 여기지는 않을 게 틀림없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감독의 개성이 잘 드러난 영화로 보인다. 영화를 통해 자신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도 '솔직하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남자의 찌질한 속물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건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도 예외가 아니다. 거북하긴 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아씨들 (0) | 2020.03.26 |
---|---|
개 (0) | 2020.03.18 |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0) | 2020.03.07 |
상냥한 폭력의 시대 (0) | 2020.03.02 |
결혼 이야기 (0) | 2020.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