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아씨들'을 봤다. 소설을 안 읽은 탓인지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1994년에 나온 '작은 아씨들'을 추가로 봤다. 1994년 영화는 시대순으로 진행되어 이해하기가 쉬웠다. 왼쪽이 2019년 영화 포스터이고, 오른쪽이 1994년 포스터다.
2019년 '작은 아씨들'은 올해 아카데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여러 부문에서 경합을 벌였던 작품이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여성 감독의 작품이어선지 다정다감하면서 아기자기한 여자들의 세계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같은 소설을 소재로 한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35년 전에 나온 1994년 작품에서는 고전적인 분위기가 났고, 2019년 작품은 현대적이면서 다이내믹했다. 19세기 중반을 재현한 면에서는 1994년 작품이 더 충실한 것 같다.
영화는 따스하면서 휴머니즘이 가득하다. 개성이 뚜렷한 메그, 조, 베스, 에이미, 네 자매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무대는 150년 전의 미국이다. 그때는 여자들이 투표권도 없었고, 돈을 벌어 자립할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구김살 없이 자란 네 자매는 꿋꿋하게 자기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이야기의 중심은 작가를 지망하는 둘째 조다. 원작 소설을 쓴 루이자 메이 올컷 본인의 캐릭터인 것 같다. 자유분방하고 독립심이 강하며 말괄량이 기질이 있다. 네 자매의 성격은 출생 순서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성을 보인다. 남자 형제였어도 비슷했을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첫째 메그를 닮았고, 그녀에게서 친근감을 느꼈다. 에이미는 전형적인 막내 기질이다.
무엇보다 네 자매의 어머니가 대단하다. 남편이 부재한 집안을 이끌며 네 자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2019년 영화에서는 로라 던이 연기했다. 로라 던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결혼 이야기'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는 배우다. 네 딸 중 조가 어머니와 정서적으로 가장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어머니와 조가 주고받는 눈빛이다. 에이미와 로리가 유럽에서 돌아와서 둘의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조는 충격을 받았지만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런 딸의 마음을 어머니는 안다. 에이미를 껴안아주는 조와 어머니의 눈이 마주칠 때 두 사람의 눈길은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우면서 애틋하다.
명대사도 여러 군데 나온다. 그중 하나는 조가 어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말이다. "여자도 감정뿐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어요. 외모뿐 아니라 야심과 재능이 있어요. 전 사람들이 여자에게 사랑이 전부라고 말하는 게 지긋지긋해요. 그런데 너무 외로워요." 마지막 대사에서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영화의 결말은 조도 결혼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부분이 아쉬웠던지 2019년 영화에서 거윅 감독은 <작은 아씨들>의 책 흥행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해석을 한다. 내 개인 생각으로도 조가 결혼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며칠 간격을 두고 1994년 영화를 한 번, 2019년 영화는 두 번 봤다. 세 번째 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등장 인물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작은 아씨들'은 네 자매의 성장기면서, 우리 모두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밝고 따뜻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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