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샌. 2020. 3. 18. 11:30

'보리'라는 이름을 가진 개의 눈을 통해 인간과 인간 세상을 얘기하는 김훈 작가의 소설이다. 보리의 주인은 댐 건설로 집이 물에 잠기게 되어 고향을 떠나는 수몰민 가족이다. 어촌에 터를 잡았지만 고기잡이하던 가장이 죽자 다시 외지로 내쫓기듯 떠난다. 이 책의 부제는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다. 인간이나 개나 생명 가진 것이 살아가는 고단한 숙명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나는 개를 싫어한다. 밖에서 어쩌다 개를 만나면, 개 역시 그런 나를 아는지 유난히 나만 보면 경계하면서 캉캉 짖어댄다. 누가 자기에게 적대적인지 눈치 하나는 빠른 것 같다. <개>에 나오는 보리는 인간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웬만큼은 알아챈다. 보리에 비라면 오히려 인간의 개에 대한 몰이해가 깊다.

 

작가는 세상의 개를 대신해서 짖는다고 했다.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다.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

 

<개>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밤중에 달을 쳐다보고 짖는 개는 슬픈 꿈을 꾸는 개다. 이런 개들은 달을 향해 목을 곧게 세우고 우우우우 짖는다. 짖는 소리가 아니라 울음에 가깝다.

보름달은 가까워 보이고 초승달이나 그믐달은 멀어 보인다. 보름달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달이 점점 세상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달이 다가오면서 세상은 점점 환해지고, 먼 산의 등성이까지도 눈앞에 가까이 보이는데, 달한테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냄새도 풍겨오지 않는다.

달을 쫓아서 들판을 달리고 또 달리면, 가까이 다가오던 달은 멀리 달아난다. 밟을 수 없고 물어뜯을 수도 없는데, 밟을 수도 물어뜯을 수도 없는 달은 세상을 환히 비추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그믐달을 들여다보면, 달은 이 세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새파란 칼처럼 생긴 그믐달의 가장자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녹아들면서 희미하게 빛날 때, 슬픈 개는 점점 사라져가는 달을 향해 우우우우 운다.

달은 개를 손짓해 부르지만 달은 개의 울음을 듣지 못한다. 알 수도 없고 다가갈 수도 없고 발 디딜 수 없는 그 먼 곳을 향해 개는 울고 또 운다. 우는 개는 주인집 개장국 솥 속에서 죽더라도, 죽어서 이 다음에 달 속의 개로 태어나고 싶은 꿈을 꾸는데, 그 꿈이 달밤의 개를 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개 한 마리가 달밤에 울면, 그 울음소리가 온 동네에 퍼지고 울음이 또 울음을 불러와서 온 동네 개들은 울음에 울음을 잇대어가며 울고 또 운다.

묶인 수캐들도 우우우우 운다. 이웃 동네 암캐의 몸냄새가 봄밤의 꽃냄새 속에 섞여서 풍겨올 때 묶인 수캐들의 몸 속에서는 화산 같은 울음이 터진다. 수캐들은 뒷발로 땅을 긁다가, 앞발을 들어서 달 쪽을 쥐어뜯다가, 이빨로 쇠사슬을 물어뜯다가, 이도저도 못 하고 우우우우 운다. 개들의 슬픔은 전염병처럼 번진다. 수캐 한 마리가 우우우우 울면, 그 울음이 다른 수캐의 슬픔을 일깨워서 우우우우 울고 온 동네 수캐들이 따라서 울고 온 동네 암캐들도 따라서 운다.

우우우우.... 컹컹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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