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산을 올라보면 알 거야
같은 길도 여러 번 걸어보아야
길이 열린다는 것을
새침한 산새는 휙 지나가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나무도 한 번 지나가는 이에게
이야기를 걸지 않는다
여러 번 걷고 가만히
보는 자에게만 보이는 길
새의 노랫소리
얽혀 있는 나무의 포옹
꽃의 향기
바람결에 스치우는 풀
그리고 걸음마다 들리는
나뭇가지 부서지는 소리
가만히 산을 올라보면 알 거야
같은 길도 여러 번 걸어보아야
길이 열린다는 것을
- 슬기로운 등산법 / 곽은지
딱 우리 동네 뒷산에 맞는 시다. 10년 동안 살면서 제일 많이 찾은 곳이 뒷산이다. 등산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그래서 부담이 없고 편안하다. 오르는 데 특별한 준비도 필요 없다. 운동화를 신고 나서기만 하면 된다. 늘 같은 길이어서 새로운 게 없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늘 숲의 향기는 어제와 다르고, 오늘 바람 소리는 어제와 또 다르다. 그만큼 숲의 품은 넉넉하다. 무슨 어리광을 부려도 다 받아준다. 뒷산은 어떤 때는 다정한 친구 같고, 어떤 때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 같다. 뒷산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달음박질하는 산이 아니다. 산책하듯 어슬렁어슬렁 가만히 걷는 산이다. 그래야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나무가 포옹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자주 앉아서 쉬는 바위,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구경하는 벤치, 햇빛바라기를 하는 풀밭은 그중에서도 내가 아끼는 장소다. 나는 뒷산을 사랑한다. 같은 길도 여러 번 걸어야 비로소 나의 길이 되는 게 아닐까. 하나의 길이 열려야 비로소 세상의 모든 길과 연결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시인이 말하는 '슬기로운 등산법'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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