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가을의 소원 / 안도현

샌. 2020. 9. 28. 08:12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 가을의 소원 / 안도현

 

 

자리에서 일어나면 싸늘한 기운이 적당히 기분 좋다. 자동으로 창문을 열던 손길도 멈추었다. 창 곁에 다가와 있던 안개가 천천히 물러가고 있다. 그 빈 자리를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채우기 시작하는 아침이.

 

시인을 따라 내 가을의 소원은 뭐가 있을까를 들여다본다. '소원 없음'으로 소원을 삼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라는 건방진 생각도 해 본다. 쉼 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가운데 자연은 그대로 여여(如如)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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