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쥐 / 요사노 아키코

샌. 2020. 12. 3. 11:21

나의 집 천장에 쥐가 사느니라.

빠작빠작 소리남은

끌 잡고 상을 새기는 사람

밤에도 자지 않음과 같으니라.

또 그의 아내와 춤을 추면서

빙 돌아가는 울림은 경마가 달리는 모습.

내 글 쓰는 종이 위에

천장 위 모래며 먼지들

펄펄 날려옴도

그들이 어찌 알 것인가?

그러나 나는 생각하느니

나는 쥐들과 함께 살고 있노라.

그들에게 먹을 것이 있으랴.

천장에 구멍이라도 뚫어서

때때로 나를 엿보라.

 

- 쥐 / 요사노 아키코

 

이웃간에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가끔 뉴스에 나온다. 며칠 전에는 윗집 현관문에 인분을 뿌린 사건이 있었다. 댓글에는 누리꾼의 설왕설래가 무성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층간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행히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한 중재로 윗집 사람을 만나고 나서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층간 소음도 소음 자체이기보다는 이웃 사이에 소통의 문제인 것 같다. 윗집에서 조심하려는 의지만 보여줘도 소음의 관용도는 훨씬 높아진다.

 

내가 원래 소리에 민감하지만 늙어가면서 점점 더 예민해진다. 어쩐 일인지 청력에서는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옛날에 아파트가 없을 때 소음 유발자는 대개 쥐였다. 우리 집에서도 밤만 되면 천장에서 쥐들의 운동회가 열렸다. 아버지는 시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이누무 쥐새끼들" 하면서 천장에 빗자루를 던지셨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어찌 쥐들이 사람의 심사를 헤아리겠는가. 그때 나는 아버지가 화를 내는 게 더 이상했다. 아무리 난리를 쳐도 눈만 감으면 잠에 빠지던 시절이었다.

 

중3으로 올라가면서 부모님은 나를 위해 읍내에 방을 하나 구해줬다. 등교 시간이 두 시간이 넘게 걸리니 공부하는 데 지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목공소를 하는 집이어서 공장과 가까이 있는 방이었다. 나무를 자르는 전기톱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소음 때문에 공부에 방해를 받았던 기억이 없다. 그런 환경에서도 중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진학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도 독서에 집중할 수 없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소음에 한 번 신경이 쓰이면 온몸의 촉수가 그리로 집중된다. 꼭 위층 탓만도 아니다.

 

요사노 아키코는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일본의 시인이다. 글 쓰는 가난한 작가는 한밤중에 쥐가 내는 소음이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소음에 관한 한 성인의 경지에 든 것 같다. 머리 위에서 소란을 피우는 쥐를 어쩌면 이렇게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하물며 천장을 뚫고 자신을 봐 달라고까지 한다. 내 처지에서는 이 시인이 하늘보다 더 위대하게 보인다. 감히 기웃거리지도 못할 경지다.

 

<장자>에 나오는 목계(木鷄) 이야기를 펼쳐본다.

 

기성자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기르고 있었다. 열흘이 지난 뒤 왕이 물었다.

"닭은 싸울 준비가 되었느냐?"

"아직 덜 되었습니다. 지금 한창 허세와 교만을 부리고 의기양양합니다."

열흘이 지난 뒤 왕이 다시 묻자 대답했다.

"아직 덜 되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나 그림자를 보고 달려들려고 합니다."

열흘이 지난 뒤 다시 묻자 대답했다.

"아직 덜 되었습니다. 다른 닭을 증오의 눈빛으로 보고 잔뜩 성을 냅니다."

열흘이 지난 뒤 다시 묻자 대답했다.

"거의 다 되었습니다. 닭들 가운데 덤비는 녀석이 있어도 아무런 흔들림이 없습니다.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이 평정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닭은 감히 대응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도망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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