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얼굴들 다 어디로 가 있는 걸까
십여 년 외딴곳에서 하루하루 보내다가
이 번잡한 광화문사거리 다시 와 서보니
주름진 얼굴 된 나만 산 것 같다
우리 기다려주던 사람이나 나무들
풍경 하나씩 바꾸며 없어져 갔고
옛것들 다 비켜서라!며
새것들 차례로 와서 치장할 거고
그들끼리는 쉽게 친해지겠지
그렇지, 그들끼리는
그들 세상을 공들여 만들어가겠지
우리가 보낸 세월까지 지우면서
- 너 여기서 무엇하고 있느냐
누구 내 어깨라도 툭 쳐줬으면 싶다
- 아는 얼굴들 다 어디로 / 이유경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단독주택이 모여 있던 동네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해서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전파상이 있고, 콩나물 할머니가 앉아 있고, 아이들 뛰노는 소리로 분주했던 골목길을 비롯해 모든 것이 증발하여 버렸다. 옛 기억과는 너무 괴리감이 크고 낯설어 마치 외계 행성에 온 것 같았다. 추억 여행은 시작하자마자 끝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대도시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옛것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광화문광장만 해도 그렇다. 만든 지 10년이 겨우 된 광장을 다시 뜯어고치는 모양이다. 추억 속 세종로는 가운데 우람한 가로수가 있던 드넓은 도로였다. 옛것이 좋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보낸 세월이 지워지고 변하는 게 서운할 뿐이다.
어차피 부평초 인생이지만 세월의 물결이 너무 세다. 홍수가 되어 모든 걸 휩쓸어간다. 어디 물살 약한 가장자리에 닿아 잠시라도 쉬고 싶다. 거친 세류(世流)가 가만 놔두지 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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