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라" "부드럽게 밀어라", 당구를 칠 때 옆의 고수한테서 자주 듣는 말이다. 수 년째 똑같은 지적을 받고 있으나 말처럼 쉽지 않다. 오래전에 테니스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깨에 힘을 빼라는 충고를 수도 없이 들었다. 아마 10년 정도 지나서야 그런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힘 빼는 데 3년이 걸린다고 운동선수들이 흔히 말한다. 전문 선수들이 그럴진대 일반 아마추어는 오죽하겠는가. 운동에서 힘 빼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리라.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이기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힘주어 친다고 공이 세게 나가는 게 아니다. 근육이 경직되면 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니 몸에 힘만 잔뜩 들어갈 뿐이다.
멘털 스포츠인 바둑도 마찬가지다. 힘이 들어간 수는 금방 눈에 띈다. 위기십결(圍棋十訣)에서 첫 번째 나오는 것이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욕심을 부리면 이길 수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이기려는 마음을 떠나야 한다. '반전무인 반상무석(盤前無人 盤上無石)'도 같은 의미의 경구다. 앞에 상대가 없는 듯이, 바둑판에 돌이 없는 듯이 바둑을 둘 수 있는 경지도 있는 모양이다.
아나운서가 방송에 들어가기 전에 안면 근육을 풀어주면서 혀를 굴리는 동작을 하는 걸 봤다. 이것도 힘을 빼려는 사전 작업이 아닌가 싶다. 무엇이건 굳어 있으면 제 성능이 나오지 않는다. 가수가 노래하기 전에 발성 연습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런 움직임을 통해 마음도 풀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힘을 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힘을 뻬야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기 위해서다. 이기려는 욕심이 동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 딱딱해진 몸에서 제대로 된 운동 신경 반응이 나올 수가 없다.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몸에 힘이 빠져야 내 잠재력이 백 퍼센트 발휘된다.
매일 블로그에 뭔가를 끄적거리지만 글쓰기에도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 남에게 잘 보이겠다면 의욕이 넘치면 글은 딱딱해진다.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글을 수필이라고 하는데, 수필이야말로 절대로 힘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고수와 하수는 힘을 얼마나 뺏느냐에 따라 갈라진다. 힘이 빠진 고수의 몸짓은 아름답다. 억지가 없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힘을 빼야 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 50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힘이 빠진 것 같지 않다. 얼마나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해졌는지 살펴보면 안다. 3년 만에 힘을 빼는 고수도 많은데 삶이라는 놀이마당에서 내 춤사위는 아직도 딱딱하고 어색하다.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