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익어 홍시가 되듯 사람은 나이가 먹는다고 저절로 성숙해지지 않는다. 늙으면 바람 불듯 물 흐르듯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가당찮은 생각이다. 잘 익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년에 들어서고 보니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 자기 독단에 빠지는 일이다. 노인은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하면 자신의 경험을 과대 해석하는 착각에 빠진다. 특히 하나의 전문 분야에 평생을 보낸 사람일수록 이런 성향이 강하다. 지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기준이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는 게 버릇이 된 사람을 흔하게 본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목소리가 크고 모임을 주도한다. 동조하고 따르는 사람도 많다. 자기 생각이나 믿음이 옳다고 확신하므로 남을 가르치려 하고 자신의 지식을 과시한다. 이런 함정에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SNS에서 '좋아요' 숫자가 올라갈수록 우쭐할 게 아니라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고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우물 안 개구리다. 우물이 커봤자 거기서 거기다. 중요한 것은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인간 성숙도의 차이는 거기서 갈린다. 내 한계를 인식할 때 우리는 겸손해지고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노인 중에서 괴소문 퍼뜨리는 이상한 유튜브만 보면서 이리저리 퍼나르는 사람도 있다. 제발 건설적인 데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는 이 아름답고 다양한 세상을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 이 지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아깝지도 않은지 묻고 싶다.
노년이 되면 애써 관심 분야을 넓힐 필요가 있다. 친구 S는 요사이 제빵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몇 년간 기타에 몰두하더니 또 바꾼 모양이다. S는 자기 주관보다는 포용성이 좋은 친구다. 이런 특징은 주변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무엇이든 배우려는 마음가짐은 젊게 사는 방법 중 하나다. 남 탓을 하며 세상을 원망하거나 울분을 토할 이유가 없다.
인간의 마음은 여름 채마밭과 같다. 잠시만 게을러도 이내 잡초로 가득해진다. 늘 살피고 되돌아봐야 한다. 노년은 마음 편하게 띵까띵까 유람하는 시기가 아니다. 내부 규율과 절제가 인생의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풀이 우거지고 열매는 초라하리라.
나는 새해을 맞으며 '금방 죽는다'를 화두로 삼자고 다짐했다. '우물 안 개구리'도 잊지 말아야 할 인간의 한계 인식 중 하나다. 내 노계(老戒)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