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나운 세상에서 그나마 주변이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술에 적당히 취할 때다. 너무 과해도 안 되고 소주 반 병에서 한 병 사이가 알맞다. 그 정도면 세상이 복사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난다. 단, 주변이 시끌벅적하면 안 된다. 사람들의 수다 가운데서는 그런 기분을 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집에서 혼자 조용히 주신(酒神)을 영접할 때 나는 행복해진다.
아내가 처가에 갔다. 같이 내려갈 예정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정이 생겨 아내만 내려갔다. 며칠간 혼자서 지내게 되었다. 몇 가지 계획이 궂은 날씨로 틀어지고 외출도 못한 채 집 안에서만 보내고 있다. 하필 이런 때 미세먼지가 몰려오고 하늘까지 잔뜩 찌푸릴 게 뭐람. 그러나 외로움을 즐길 좋은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평상시에도 내 먹을거리는 스스로 알아서 차려먹으니 아내가 없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대신 마음 편하게 술을 즐길 여유는 생겼다. 요기는 간단하게 마치고 베란다에 있는 술병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이번에는 소맥으로 해야지. 손주에게 줄 과자를 안주 삼아 몇 잔 홀짝거린다. 마법에 걸린 듯 절간 같던 집안에 봄기운이 가득해진다.
나는 한 잔을 여러 번에 걸쳐 음미하며 마신다. 찔끔거리며 마신다고 핀잔을 받기도 있지만, 술은 모름지기 천천히 취하는 게 제 맛이다.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나를 지켜 본다. 알코올이 짜르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느낀다. 다도(茶道)가 있는데 주도(酒道)가 없어서는 안 되지. 술 따르는 것도 마시는 것도 슬로 모션이다. 이러니 술집의 소란한 분위기에서 어찌 술맛을 제대로 느끼겠는가. 나 홀로 독주(獨酒)야 말로 최고의 음주법이다.
그러다가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스톱이다. 더 기분을 내다가는 그때부터 내리막이다. 주도에서 중요한 것은 멈출 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낮술을 하면 행복감이 저녁까지 간다. 나는 통속화 돼 버린 '행복'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때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세상이 시끄러운들 나와 무슨 상관이랴.
이렇게 마시는 술은 다음날 후회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의 때를 한 꺼풀 벗겨낸 듯하다. 이놈의 몹쓸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세상에 핑계를 대지 않는다. 반대로 세상을 껴안을 정도로 마음이 넓어진다. 밉게 보이던 사람도 "뭐 그럴 이유가 있겠지" 하며 너그럽게 이해한다. 정말 알콜의 힘은 위대하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일 이러다가는 중독이 될 뿐 효과가 없다. 몸과 마음의 소리만 잘 들을 줄 알면 된다. 귀를 기울이면 알코올이 언제 필요한지 가르쳐주게 되어 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마음의 평화가 곧 행복이 아닐까. 마음의 평화는 어느 정도 외부 세계와 단절이 되어야 가능하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평화가 깨질 수밖에 없다. 비교하고 유혹당하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마음의 평화를 얻자면 바깥이 아닌 안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야 한다. 나에게 술은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을 일시 마비시켜주는 작용을 한다. 어느 친구가 또는 애인이 이렇게 날 도닥여줄 것인가. 그러니 한없이 고마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