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9) - 무소유

샌. 2021. 3. 25. 10:55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 첫부분은 이같은 간디의 말로 시작한다. <간디 어록>에서 이 구절을 읽고 당신이 무척 부끄러웠다고 고백한다. 당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H 스님의 무소유 논란이 일었고, 인기 스타였던 스님은 한 순간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수도자의 세속적인 소유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무소유란 물질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소유한 물질에 대한 애착이 무(無)라는 얘기다." 공공연히 이런 생각을 밝히는 수도자도 있다. 잘못하면 자기 변명이요, 말장난에 불과한 핑계가 되기 쉽다.

 

법정 스님은 분명히 물질의 무소유에 대해 말씀하셨다. 무소유란 내 소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걸 버리는 것임을 난을 키우던 경험을 가지고 설명한다. 심지어는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라는 간디의 말도 소개한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무소유의 역리(逆理)로 수필의 끝을 맺는다.

 

가정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인과 달리 수도자는 마땅히 무소유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청빈(淸貧)을 몸소 실천하지 못하면 수도자가 아니다. 청빈은 어쩔 수 없는 가난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다. 물욕(物慾)에 물들 때 수도자가 타락하는 사례를 무수히 만난다. 위선자로 가는 첩경이기도 하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책장에서 꺼내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책에는 스님이 1970년대에 쓰신 30여 편의 수필이 실려 있다. '맑고 향기롭게'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정갈한 스님의 인품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아름다운 유산은 무소유의 정신과 함께 한 보살님과의 인연으로 세워진 길상사가 아닐까 싶다. "그깟 1,000억,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세상에는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그래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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