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블랙 미러

샌. 2021. 3. 10. 11:21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다.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로, 전체가 19편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SF는 먼 미래를 다루어서 황당한 내용이 많지만 '블랙 미러'는 몇 년 뒤의 세상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현실감이 있다. 현재에서 조금만 더 기술이 발전하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들이다. 두 달 전쯤에 본 것이지만 상당히 재미있었고, 일부는 충격적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몇 편 있다. 하나는 '아크 엔젤'이다. 어린 딸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한 어머니가 딸의 머리에 칩을 이식한다. 그러면 집에서 컴퓨터로 위치뿐 아니라 아이가 보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 밖에서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확인 가능하다. 심지어는 스트레스 필터를 통해 아이의 시각도 통제한다. 위협적인 대상은 아예 모자이크 처리되어 아이는 보지 못한다. 모든 기술은 선작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딸이 성장한 뒤에도 어머니는 몰래 감시하고 결국은 모녀 사이가 심각한 파탄에 이른다.

 

만약 인간의 생각을 읽는 기계가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내가 하는 공상이나 속마음을 상대가 몰래 훔쳐보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마 지탱할 수 있는 인간 관계가 없을 것이다. '악어' 편에서는 '리콜러'라는 인간의 기억을 읽는 기계가 등장한다. 결국 이 기계 때문에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 세상에는 모르는 편이 더 나은 게 훨씬 많을지 모른다.

 

'추락'은 SNS가 일상을 지배하는 미래를 다루고 있다. 휴대폰으로 서로가 평점을 매기는 데 이 점수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 평점이 낮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신분 상승을 꾀하던 여자 주인공은 발버둥을 치다가 감옥에 갇힌다. 거기서 실컷 욕을 하는 장면이 통쾌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우리는 SNS를 통해 타인의 '좋아요'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추락'의 세계로 연결되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군인의 오감을 통제해서 죄책감 없이 살인을 하도록 만든다. 칩이 이식된 군인의 눈에는 사람이 좀비로 보인다. 지휘부에서는 특정 인종 박멸에 이 시스템을 활용한다. '블랙 미러'에는 인간의 뇌를 제어하는 미래 사회가 많이 나온다.

 

어지러울 정도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발전하는 기술을 인간이 현명하게 통제하면서 기술 유토피아를 만들 수도 있다. 그보다는 인간의 어두운 본능이 디스토피아로 이끌 위험이 더 크다는 점을 '블랙 미러'는 경고한다. '블랙 미러'는 우리의 근미래에 대해 숙고해 볼 수 있는 좋은 내용의 드라마다. 미래 세대의 아이들과 함께 보며 얘기하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청불이다. 쓸데없는 베드 신이 너무 자주 나와서 시선을 흩트려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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