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다. 프랑스의 조류학자인 뒤부아(P. J. Dubois)와 철학자인 루소(E. Rousseau)가 함께 썼다. 새는 1억 5천만 년 전에 공룡에서 생겨난 아주 오래된 생명체다. 저자들은 새를 '작은 철학자'라고 부른다. 가볍고 조용히 살아가는 새들에게서 그들이 가진 철학을 발견한 것이다.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은 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나 가르침을 열린 마음으로 들으면서 전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오리를 비롯해 22종의 새가 등장한다. 사랑, 번식, 싸움, 절제, 열정 등 각각이 가진 특징이 재미있고 묘사되어 있다. 오리의 털갈이 이클립스(eclipse), 암탉이 모래 목욕을 할 때의 행복, 바위종다리 부부의 유별난 바람기, 새장 밖을 떠날 줄 모르는 카나리아, 거위의 정신적 젖떼기, 도요새의 신비한 여행, 까마귀의 놀라운 지적 능력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몇 군데를 인용한다.
"털갈이의 시간은 나약한 시기다. 새들은 털갈이를 하느라 때로는 날아오르는 능력조차 잃어버린다. 오리가 그렇다. 우리는 이를 털갈이 이클립스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을 가리키는 멋진 표현이다. 새들은 소중한 깃털이 새로 자라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며, 고요를 흐트러뜨릴 수 있는 움직임을 자제하며, 그렇게 새는 기다린다. 인내한다. 재생이 일어나고 마침내 힘과 아름다움을 되찾을 때까지.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새들은 사랑을 찾는 일에서도 인간보다 낫다. 인간과 달리 유혹, 구애 행동은 새들에게 간단한 일이다. 그리고 새들은 자신의 구애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바로 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몇 겹으로 숨기고, 상대의 마음을 해독하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알기까지 몇 시간, 며칠, 몇 달,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새들에게 세상 무엇보다 쉬운 일이 우리 인간에게는 한없이 복잡한 문제가 된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불안정한 존재다."
"새들은 이미 매 순간을 즐기고, 먹이와 한 줄기 햇빛에 감사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새들은 애초에 죽음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삶의 의미를 알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새들은 지금 삶 속에 완벽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자기 자신 사이에 그 어떤 작은 틈새도 없다. 새들이 현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 박새는 이러이러한 새가 되고 싶어 하거나, 또 내일을 생각하고 삶을 계획하면서 나중이 더 나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새들은 미래의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않고 단순히 지금을 산다."
그밖에도 새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큰되부리도요는 알래스카와 뉴질랜드 사이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이동한다고 한다. 몸무게가 250그램밖에 안 되는 작은 새가 1만 km가 넘는 거리를 꼬박 일주일 동안 시속 70km로 난다. 도시에 사는 까마귀는 자동차 신호등을 이용할 줄 안다. 빨간불일 때 자동차가 멈춰 있는 곳에 호두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파란불이 되면 자동차가 전진하면서 호두 껍데기를 부순다. 이윽고 다시 빨간불이 되어 자동차가 멈추면 까마귀는 땅으로 내려와 열매를 집어간다.
새의 깃털은 부족한 점을 감추는 역할도 있다고 한다. 화려하게 꾸밀 수록 노래 실력은 꽝이다. 반대로 최고의 가수들은 보통 소박한 깃털을 가지고 있다. 새들의 세계에서 음악의 거장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수수한 겉모습 때문에 누구의 눈길도 끌지 않는다. 새의 진화에서는 깃털과 노랫소리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 심지어 까마귀에게는 아름다운 깃털도, 노래 실력도 없다. 대신 현명함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로 새들이 사라지는 현상을 우려한다. 이미 6차 대멸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비정상적인 멸종의 회오리에서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책의 마지막은 이렇다.
"생각해보자. 이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일까? 새들이 존재하지 않는 회색빛 세상, 아이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제비를 멸종시켰는지 설명해줘야 하는 세상을? 이러한 미래가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건 자신의 근사한 날개를 스스로 꺾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마음대로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신이 누구보다 강하고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우월하고 싶은 에고(ego)의 배를 채워준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과 권리가 있다는 믿음은 착각이다.
오늘날 인간은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는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방울새를 손 안에 쥐고 있다. 새의 심장은 우리의 손가락 사이에 짓눌려 있다. 새는 단지 다시 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새가 비상할 수 있도록 손을 펼지, 아니면 더 꽉 쥘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중에 가장 분명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새를, 그리고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사랑하기로 한 바로 그 순간부터야말로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고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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