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고향으로 가셨다. 제자들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는데 많은 사람이 듣고 무척 놀랐다.
"이 사람이 어디서 힘을 얻어 이런 일을 하는가? 이 사람한테 내린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 손에서 이런 기적들이 이루어지다니? 이 사람은 고작 장인이며, 마리아의 아들로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 누이들도 여기서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친척들과 자기 집 밖에서는 푸대접받는 일이 없습니다."
고향에서 예수께서는 병자 몇 사람에게 손을 얹어 고쳐주셨을 뿐,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고 그들이 믿지 않는 데 놀라워하셨다.
- 마르코 6,1-5
예수에 대한 몇 가지 정보가 담겨 있는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다.
1. 고향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 예수는 전과 완전히 달라져서 고향에 돌아온 듯하다. 고향에서 떠나있었던 기간도 상당히 된 것 같다. 이때까지 <마르코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활동은 고작 몇 달이면 충분하다. 그 이전의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의 다른 활동이나 수련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1. 불현듯 고향으로 돌아온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사람들은 놀란다. 어디서 이런 힘과 지혜가 나왔는지 의아해 한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예수는 자랄 때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다. 예수는 성장 과정에서 여느 아이들과 다른 점이 없었다는 뜻이다.
1. 예수에게는 네 형제와 누이들이 있었다. 예수는 장인(목수)이었다.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걸 봐서는 아버지 요셉은 이미 돌아가신 것 같다.
1. 예수는 고향에서 기적을 행할 수 없었다. 예수의 기적은 일방적이지 않다. 기적은 상호 소통과 교감하에 이루어진다.
1. 자신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향 사람들에 대해 예수는 놀라워한다. 예수조차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갈릴래아 나자렛은 기층 민중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사고방식을 버리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 더구나 예수의 코흘리개 시절을 잘 아는 고향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존경심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8세기 중국에 마조(馬祖) 선사가 있었다. 유명한 선승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살아 있는 부처를 보려고 몰려 들었다. 이런 광경을 보던 마을 노파가 말했다.
"대단한 스님이 오시는 줄 알았더니 고작 마씨네 꼬마 녀석이 아닌가."
이에 마조는 이렇게 응답했다고 한다.
"권하노니 그대여 고향에 가지 마오
고향에서는 도를 이룰 수 없나니
개울가의 옛 할머니 아직도 옛 이름을 부르누나"
오늘 나는 어제에 바탕을 두지만 어제의 나는 아니다. 과거의 이미지나 고정관념은 타자를 진실되게 만나는데 방해가 된다. 지금 형성되는 인식 역시 또 다른 고정관념이 된다. 선입견 없이 타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겠다. 성경을 통해 예수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