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20]

샌. 2021. 8. 11. 11:06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갑시다" 하셨다. 그들은 군중을 남겨 두고 배에 타신 예수를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갔다. 그런데 거센 회오리바람이 일어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와서 배가 곧 물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깨우며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이 안 되십니까?" 하였다.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있어라" 하시자 이내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그러고 나서 "왜 겁냅니까? 아직도 믿음이 없습니까?" 하셨다. 그들은 몹시 질려 두려워하며 서로 말했다. "도대체 이 분이 누구시길래 바람과 호수조차 복종할까?"

- 마르코 4,35-41


예수의 활동 무대였던 갈릴래아 호수는 둘레 길이가 53km나 되는 큰 호수다. 남북이 21km, 동서가 13km로 길쭉한 감자 같이 생겼다. 민물 호수라 어족 자원이 풍부했고, 베드로와 요한 형제 등 예수의 주요 제자들은 이 갈릴래아 호수의 어부였다.

예수는 호수에 배를 띄우고 육지에 있는 군중을 상대로 말씀을 전했다. 몰려드는 군중을 막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날은 가르침을 끝내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는데 돌풍이 불면서 배가 전복할 위기에 처했다. 제자들의 소동과 달리 예수는 평안하게 주무셨다. 이때 말씀으로 풍랑을 잠재우는 예수의 이적이 등장한다.

성경에 나오는 초자연적 이적을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적이 사실이냐 아니냐로 논쟁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위대한 인물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신비한 능력을 강조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비일비재했다. 중요한 것은 그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이 일화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도대체 이 분이 누구시길래?"라는 제자의 말이 아닐까. 마르코는 분명 이 일화를 기록하며 예수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목사나 신부가 전하는, 기독교 교리에 담긴 예수와 실제 예수는 다를 수 있다. 내가 성경을 읽는 목적은 2천 년 전 갈릴래아 땅에서 군중을 가르치시고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맞으신 실제 예수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서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길래?" - 그날 저녁의 갈릴래아 호수의 제자들처럼,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 또한 이 물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관습에 젖은 신앙, 죽은 신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장면을 묘사한 렘브란트의 '갈릴래아 호수의 폭풍'이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두 세계를 역동적으로 그렸다. 폭풍우 치는 바다는 우리네 인생살이와 같다.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과연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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