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21]

샌. 2021. 8. 20. 10:50

그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 지방으로 갔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 살았는데, 이제 누구든 쇠사슬로도 묶어둘 수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인 적이 있지만,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어 버려서 아무도 그를 휘어잡지 못했다. 그는 밤낮없이 늘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짓찧곤 했다. 그런데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는 달려와 절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 이름으로 말합니다. 제발 괴롭히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니, 그가 "군단입니다. 수가 많으니까요" 하고는 그 고장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거듭 빌었다. 거기 산기슭에는 놓아기르는 돼지떼가 있었는데, 더러운 영들이 간청했다.

"우리를 돼지들에게 보내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더러운 영들이 그 사람한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니,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달려 모두 빠져 죽었다. 돼지 치던 이들이 달아나 고을과 마을 농가에 이 일을 알리자 사람들이 웬일인지 알아보려 왔다. 그들이 예수께 와서는 귀신 들렸던 사람, 곧 군단을 지녔던 그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질겁을 했다. 지켜본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돼지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두 이야기해 주자, 그들은 예수께 자기네 고장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자 귀신 들렸던 사람이 당신 곁에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허락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한테 가서, 주님이 행하신 일, 곧 하느님이 그대에게 자비를 베푸신 일을 모두 알리시오."

그는 물러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일을 죄다 데카폴리스 지방에 알리기 시작했고, 모두들 놀랐다.

 

- 마르코 5,1-20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 지방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사는 지역이다. 게라사인은 넓은 데카폴리스의 한 부분으로 현재는 요르단, 시리아와 겹친 곳이다. 예수 일행은 전날 저녁에 가파르나움에서 출발하여 갈릴래아 호수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이곳에 도착했다. 그날 밤에 돌풍이 불어 배가 뒤짚힐 뻔한 소동이 있었다.

 

게라사인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이야기는 길면서 자세하다. 귀신은 자신을 '군단'이라고 부른다. 군단은 로마군의 편제명이다. 한 군단은 대략 5천 명 정도의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귀신을 군단이라고 지칭한 것에서 예수나 당시 유대인들이 로마군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알 수 있다. 이 군단은 돼지떼와 함께 호수에 내달려 빠져 죽는다. 이 일화를 보면 예수 일행에게 민족주의적이고 전투적인 경향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방인 지역에서 예수의 태도는 갈릴래아에서와 달리 냉정하게 느껴진다. 또한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귀신들렸던 사람이 예수와 함께 하기를 간청하지만 허락하지 않는다. 돼지 2천 마리가 몰살했지만 예수는 재산상의 손실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돼지 수는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2백 마리라고 해도 큰돈이다. 아무리 유대인이 돼지를 경멸한다고 해도 이방인 농가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피해 보상에 대한 요구는 없이 예수 일행에게 마을을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있어 봐야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는지 모른다.

 

예수 메시지를 읽는 키워드 중 하나가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화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억압 받는 민중을, 종교와 정치 등 인간이 만든 굴레에서 신음하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예수의 사명이었다. 게라사인의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를 만남으로써 극적으로 어둠에서 벗어난다. 그는 마을로 돌아가서 자신의 해방 경험을 알림으로써 예수 운동에 동참한다.

 

만약 예수가 지금 오신다면 귀신은 자신을 뭐라고 부를까. 아마 '거대한 황소'라고 이름 붙이지 않을까. 현대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 월가의 상징이 황소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2천 년 전 게라사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명령하실 것이다.

"이 더러운 영아, 사람들에게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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