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33]

샌. 2021. 12. 24. 10:31

바리사이인들이 와서 시비를 걸기 시작했는데, 그분을 떠보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예수께서 당신 영으로 한숨을 쉬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찾는가? 진실히 말하거니와, 이 세대에는 표징이 주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을 버려두고 다시 배에 올라 호수 건너편으로 떠나셨다.

 

- 마르코 8,11-13

 

 

4천 명을 먹인 기적 뒤에 바로 이어 나오는 대목이다. 예수를 주목하고 있었던 바리사이인들이 이 기적을 몰랐을 리가 없다. 내가 보기에 예수의 특별함을 이보다 더 명징하게 드러내 보이는 기적이 없다. 그런데도 바리사이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한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 마음이 닫혀 있으면 어떤 기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미 바리사이인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예수를 없애기로 작정한 상태다.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지만 다시 트집을 잡을 게 뻔하다. 바리사이들에게 예수가 표징을 거절하는 이유다. 예수 또한 자신이 메시아라고 말하지 않았다. 민중의 바람이었을 뿐이다. 예수가 꿈꾸는 세상과 (다수의 민중/바리사이들)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이 당시 예수의 가장 큰 고뇌였을 것이다.

 

둘째, 4천 명을 먹인 것과 같은 거대한 기적은 없었다. 아무리 바리사이인이라고 한들 이런 기적을 접했다면 놀라고 경탄하지 않았을 리 없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어야 옳다. 예수의 기적은 예수의 메시아되심의 근거로 마르코가 삽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창작이 아니라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이런 류의 설화가 많이 나돌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만 아니라 추종자를 가진 리더라면 누구라도 가질 법한 이적들이다.

 

예수는 이적을 위한 이적은 거부했다. 오직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사실 눈만 제대로 뜨면 모든 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이 아닌가. 어느 분의 말대로 "물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게 기적"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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