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人間보다 영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약藥이 있는 줄을 안다고
수양산首陽山의 어뉘 오래된 절에서 칠십七十이 넘은 로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맛자락의 산나물을 추었다
- 절간의 소 이야기 / 백석
어릴 적에 집에서 기르던 개가 아플 때 개집에서 꼼짝 않고 엎드려 금식을 하며 버티는 걸 보았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뛰어왔는데 내가 다가가도 눈만 끔뻑일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죽은 듯이 지내다가 어느 날 거동을 시작하고 보란 듯이 회복되었다. 사람은 아프면 온갖 요란을 떠는 데 개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었다. 어린 눈에도 무척 신기했다.
절간의 소 이야기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짐승은 인간보다 영(靈)한 면이 있다. 어른들로부터 고양이는 영물(靈物)이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고양이에 대해서도 신비한 경험이 있다. 그들은 때를 안다. 병이 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고, 죽을 때가 되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한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과연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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