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파주에게 / 공광규

샌. 2022. 1. 12. 11:28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임진강변 군대 간 아들 면회하고 오던 길이 생각나는군

논바닥에서 모이를 줍던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나를 비웃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가 버리던

그러더니 나를 놀리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오던 새떼들이

 

새떼들은 파주에서 일산도 와보고 개성도 가보겠지

거기만 가겠어

전라도 경상도를 거쳐 일본과 지나반도까지 가겠지

거기만 가겠어

황해도 평안도를 거쳐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도 가겠지

 

그러면서 비웃겠지 놀리겠지

저 한심한 바보들

자기 국토에 수십 년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는 바보들

얼마나 아픈지

자기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어 보라지

 

이러면서 새떼들은 세계만방에 소문내겠지

한반도에는 바보 정말 바보들이 모여 산다고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철책선 주변 들판에 철새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알겠군

자유를 보여주려는 단군할아버지의 기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

 

- 파주에게 / 공광규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두르고 국토가 두 동강 나서 산 지 70년이 훌쩍 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독일, 베트남, 예멘 등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는 다 통일되었고 지금은 우리만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래 갈라져서 살고 있다. 한반도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다. 종전 선언을 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이념은 여전히 우리를 족쇄처럼 죄고 있다. '멸공'의 깃발을 휘두르며 주먹질하는 무리도 본다.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남과 북은 따스하게 손 잡을 수 있을까.

 

다음 주 쯤 철원으로 두루미를 보러 갈 예정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철책선을 넘나드는 두루미를 나는 질투하게 될 거다. 그리고 두루미의 "끼룩끼룩" 소리에는 귀를 막아야 할지 모른다. 분명 이렇게 비웃고 있을 테니까. "저 한심한 바보들! 자기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둘러놓고 아픈 줄도 모르는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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