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토굴가 / 나옹

샌. 2022. 1. 29. 12:33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하고 석경(石徑)에 배회(俳徊)하니

녹양춘삼월하(綠楊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處處)에 피었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그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 최귀(最貴)한고

일편무위진묘향(一片無爲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꽂아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십년(十年)을 기한정(期限定)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窮究)하니

증전(曾前)에 모르던 일 금일(今日)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심지월(一段孤明心地月)은 만고(萬古)에 밝았는데

무명장야업파랑(無明長夜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축산제불회상(靈蹴山諸佛會上) 처처(處處)에 모였거든

소림굴조사가풍(小林窟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소냐

청산(靑山)은 묵묵(默默)하고 녹수(綠水)는 잔잔한데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어떠한 소식(消息)인가

일리제평(一理齊平) 나툰 중에 활계(活計)조차 구족(具足)하다

천봉만학(千峯萬학)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에 담아두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굽은 누비 두 어깨에 걸었으니

의식(衣食)에 무심(無心)커든 세욕(世欲)이 있을소냐

욕정(欲情)이 담박(淡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데 없고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법계일상(法界一相) 나투었다

교교(皎皎)한 야월하(夜月下)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듯 올라

무공저(無孔笛)를 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무위자성진실락(無爲自性眞實樂)이 이중에 갖췄더라

석호(石虎)는 무영(舞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 제

무착영(無着嶺)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滿開)더라

나무영산회상불보살(南無靈山會上佛菩薩)

 

- 토굴가(土窟歌) / 나옹(懶翁)

 

 

지난 21일 조계사에서 수천 명의 승려가 참석한 가운데 '종교 편향, 불교 왜곡 근절과 한국 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가 열렸다. 작년에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절에서 받는 문화재 관람료를 '봉이 김선달'에 비유한 발언으로 불교계가 반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된 기독교 편향 정책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당사자와 민주당이 수 차례 사과했지만 불교계의 노기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을 코 앞에 둔 이 시기에 꼭 승려대회를 강행했어야 하느냐는 논란도 있다. 절 수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관람료 징수 문제를 건드린다고 승려대회를 여는 명분도 약하다. 그동안 불교계는 사회의 불의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수행하는 승려들이니 사회 문제에 적극 개입하지 못하는 부분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득이 걸린 문제에는 냉큼 나서는 걸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불교가 이렇게 옹졸해졌단 말인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정신은 떠올리기에도 부끄럽다.

 

절 입구에서 길을 막고 등산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이건 밖의 사람들이 언급하기 전에 불교계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행정 당국과 협의해서 충분히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남 탓을 할 게 아니라 불교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왜 욕 먹을 짓을 사서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절 수입이 줄면 살림을 간소하게 하고 거창한 단청불사 같은 짓은 벌이지 않아야 옳다.

 

나옹선사의 토굴가가 뿜는 호쾌한 기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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