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그 사람 빈집 안의 작은 불꽃이
오늘은 더욱 맑고 섬세하구나
겨울 아침에 무거운 사람들 모여서
온유의 강을 조용히 건너가느니
주위의 추운 나무들 눈보라 털어내고
눈부신 강의 숨결을 받아 마신다.
말과 숨결로 나를 방문한 온유여,
언 손을 여기 얹고 이마 내리노니
시끄러운 사람들의 도시를 지나
님이여 친구가 어깨 떨며 운다.
그 겸손하고 작은 물 내게 묻어와
떠돌던 날의 더운 몸을 씻어준다.
하루를 마감하는 내 저녁 속의 노을,
가없는 온유의 강이 큰 힘이라니!
나도 저런 색으로 강해지고 싶었다.
불타는 뜬구름도 하나 외롭지 않구나.
- 온유溫柔에 대하여 / 마종기
'따뜻할 온(溫)'과 '부드러울 유(柔)', 온유(溫柔)는 참 아름다운 말이다. 사전에는 '성격이나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러움'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교회 성경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이 있어 이 단어를 가끔 상기시켜 준다.
이 시에서는 기독교의 향기가 난다. 첫 부분인 '온유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 그 사람 빈집 안의 작은 불꽃이'의 '그 사람'은 예수를 말하는 듯하다. 아마 시인 역시 '온유'라는 말이 주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힘에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신자가 가질 덕목 중의 하나가 -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부르는 - 이 온유가 아닐까. 사랑이 곧 온유이며, 우리의 한 생애에서 제일 필요하고 유일한 것임을 믿는다. 온유에서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 말을 들먹이는 것조차 부끄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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