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가장의 밤 / 김용화

샌. 2022. 2. 26. 11:21

잠든 아내 이불 끌어다

미운 발

덮어주는 일

 

딸 자는 방 살짝 들어가

지폐 한 장

찔러주는 일

 

아들놈 우산 갖다주고

책가방

들어주는 일

 

창밖 밤비 소리 들으며

쓴술

삼키는 일

 

- 가장의 밤 / 김용화

 

 

가장으로서의 남자에게는 두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내 울타리를 소중히 지키려는 마음과, 경계에 갇힌 답답함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시를 쓴 시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앞의 세 연과 끝 연은 서로 대립되는 관계로 나에게는 읽혔다. 나는 늘 뒤쪽이 승했다. 반면에 시인은 가족에 대한 애틋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넘쳐나는 것 같다.

 

엊저녁에 라디오로 음악을 듣다가 아나운서가 소개해 주어서 이 시를 알게 되었다. 나는 아내 이불 덮어주는 일도, 딸 지갑에 지폐 찔러주는 일도, 아들놈 우산 갖다주는 일도 없었음을 확인하고 부끄러웠다. 살갑고 다정다감한 가장은 아니었다. 다만 밤비 소리 들으며 쓴술을 삼키는 일은 자주 있었다. 지나온 인생이 어두운 회색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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