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어제 꾼 꿈

샌. 2022. 5. 5. 10:17

어젯밤에는 평상시와 다른 꿈을 꿨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핵전쟁을 위협해서인지 꿈에 핵전쟁이 벌어지고 세상의 종말이 오는 광경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과 통신이 끊어지고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파트에 갇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는 전략폭격기들이 거대한 몸집을 끌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근방에서는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공기가 몰려온다는 소문에 창문을 꼭 닫는 방법 외에는 대처할 수가 없었다. 공포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다가 꿈이 끝났다.

 

이어서 꾼 꿈은 앞의 것과 반대였다. 화창한 봄날 온갖 꽃이 만발한 어느 전원 가운데였다. 탐조를 온 외국인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필드스코프를 건네며 산 꼭대기에 있는 새들을 보라고 했다. 둥지 주위에 무리 지어 모여 있는 희고 갈색을 띤 새들이 보였다. 나는 "seagull?"이라고 물었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 엉뚱했다. 갈매기가 산 위에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큰 나무와 주변에도 처음 보는 예쁜 새들이 많았다. 나는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냈지만 조작을 잘 못해 허탕을 쳤다. 외국인들은 돌아가고 봄 경치에 황홀해하다가 잠이 깼다.

 

두 꿈은 완전히 반대 되는 광경으로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지옥과 천국을 동시에 본 느낌이었다. 요사이는 새 보러 나가지 않았는데 엉뚱하게 새 꿈을 꿨다. 꿈만큼 불가해한 것도 없다.

 

보통 때 자주 꾸는 꿈은 학교에서 선생 노릇하는 악몽이다. 어쩜 그리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수업 시간을 헷갈려서 빼먹고, 교실을 못 찾아 허둥대고, 교재 준비를 하지 않아 학생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다. 꿈속에서 아주 진땀을 흘린다.

 

실제 교직에 있을 때와는 반대되는 꿈 내용이다. 현장에서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교실에 들어갔지만 아이들이 호응을 해 주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서 실패했다. 뭔가를 가르쳐주려 하는데 따라오지 않았고, 아이들이 철딱서니가 없다고 불평을 했다. 그런데 꿈에서는 반대다.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은 내가 주눅이 들 정도다. 한데 나는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자격 미달 교사다. 늘 자책하고 가슴만 치다가 꿈이 깬다.

 

퇴직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변함없이 계속되는 가위눌리는 꿈이다. 아마도 내가 분필을 잡았던 기간인 30여 년이 넘어야 이런 꿈에서 풀려날 것인가. 산과 염기가 만나서 중화되듯 아픈 경험의 기억은 반대되는 꿈을 만나 순화하려는 마음의 오묘한 작용이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저지른 업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난 뒤에는 다시 군대에 붙잡혀가는 꿈에 30년 가까이 시달렸다. 거기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나한테는 군생활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만큼 심각했던 것 같다. 군생활은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밑바닥 감정에서 벗어나는 데는 거의 10배의 시간이 걸렸다. 적어도 꿈으로 보면 그렇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군대나 학교 꿈을 볼 때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민감한 것 같다. 대체로 내향적인 사람의 특징이라고 한다. 자극에 대한 '고반응성' 역시 타고나는 기질일 텐데 너무 예민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피곤하다. 좀 둔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타고난 성향인 걸 어쩌겠는가.

 

내 해석이지만 꿈은 인간 내면의 심리적 균형을 위해 필요한지 모른다. 흔히 하는 '꿈은 반대'라는 말도 그런 연유가 아닐까. 인간의 무의식 세계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꿈이 비밀의 일단을 보여주지만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제대로 해석하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꿈은 중구난방이고 내 속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의식의 세계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름의 질서가 있을 것이다. 어젯밤의 두 꿈은 색달라서 깨고 나서도 차분하게 음미해 볼 수 있었다. 적어도 학교 꿈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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