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집에서 지내다 보면 티격태격하는 일이 생긴다. 서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굽힐 줄을 모르는 데서 말다툼이 일어난다. 싫은 소리가 몇 마디 오고간 뒤에 누군가의 입에서 꼭 이런 말이 나온다.
"늙어서 고집만 세지니 앞으로 어찌할꼬."
둘은 서로 얼굴을 보며 피식 웃고는 싱겁게 상황이 끝난다.
늙어가면서 사고가 경직되고 자기 생각에 갇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세월의 힘을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인생의 깊은 경륜은 어디 가고 쪼그라지고 편협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 노인은 인생을 헛산 것 같아 비참해진다.
노자 할아버지도 말씀하셨다.
"사람이 살아서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어서는 굳고 강해진다[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이는 몸과 함께 사고의 경직성을 지적한 것이리라. 딱딱하게 굳었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반면에 유약의 극치는 갓난아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명력을 소진하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노년이 되면서 제일 경계가 젊은이들한테 '꼰대'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다. 늙어서도 사고의 유연성을 어떻게 지켜나가느냐가 첫째 과제다. 좋은 어른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볼썽사나운 노인이 되기 십상이다. 의심하지 않는 신념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옹고집이란 말이 있다. 이때까지 '옹'을 '노인 옹(翁)'으로 알았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막을 옹(壅)'이다. '노인의 고집'이 아닌 '꽉 막힌 고집'이라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옹고집을 '노인의 막무가내 고집'으로 이해한들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정신이 왜소해지는 것에 비하면 육체의 쇠약은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흐뭇해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았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 만든 틀에서 탈피하며 유연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멋진 늙은이가 되고 싶다. 하지만 아내한테서 맨날 "고집만 세진다"는 핀잔을 듣고 있으니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어느 스님의 말대로 그때마다 전기충격기로 지져야 정신을 차리려나. 잘 늙어가면서 성숙해진다는 건 실로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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