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천지가 다함이 있어도 시름은 다하지 않으니

샌. 2022. 6. 28. 10:19

"세계 평화를 위하여!" 젊었을 때 술자리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자주 외쳤던 말이다. 젊은 날의 치기였을 망정 그 시절에는 세계와 평화를 언급할 정도로 스케일이 컸다. 요즈음 젊은이들과는 달랐다는 말이다. 물론 이 시대의 젊은이를 비난하고 싶은 심정은 조금도 없다. 도리어 각박한 생존 경쟁의 장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고담준론이 먹여 살려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마저 공개적으로 '교육부가 경제부처이며 대학은 산업 인재 양성을 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이니 누구를 나무라겠는가.

 

7, 80년대에는 지금과는 성질이 다른 울분과 저항이 있었다. 그때는 대의(大義)를 논하고 이상을 좇던 시절이었다. 그럴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심해지고 지식인의 우울과 시름은 짙어졌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선조로 가면 이념과 명분의 가치는 목숨을 내놓고도 지켜야 했다. 목을 내놓을지언정 내 지조를 앗아갈 수 없다는 서릿발 같은 선비 정신이 살아 있었다.

 

선비나 지식인의 특징을 나는 '시름'이라고 생각한다. 근심과 시름은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근심은 '해결되지 않는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 함'이고, 시름은 '마음에 걸려 풀리지 않고 항상 남아 있는 근심과 걱정'으로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근심이 단편적이라면 시름은 총체적이다. 작은 근심들이 모여 깊은 시름으로 변한다. 시대에 대한 근심도 오래 하다 보면 시름으로 바뀐다.

 

한 책에서 조선 초기 문신이었던 강희맹(姜希孟) 선생이 쓴 한시를 보았다. 제목이 오경가(五更歌)다.

 

초경 인정人定 쇠에 주위가 조용한데

눈을 감아도 잠이 없어 오래도록 멀뚱거리네

앉았다 누었다 신음하며 여윈 몸 일으키니

어떻게 이 춥고 기나긴 밤을 보내리

 

이경에 자려 해도 잠은 오지 않아

잠을 청하려고 억지로 두세 잔을 마시네

만 가지 생각이 번거롭게 일어나 더욱 어지러우니

상반되는 일이 마음에 걸려 견디기 어렵네

 

삼경에 잠 못 들어 턱을 괴고 앉았는데

등불 그림자는 경고更鼓 소리 드무네

구부정하게 기대 채로 한밤을 지내며

창을 밀치고 옮겨가는 은하수를 자주 보네

 

사경에도 오히려 침상에 무릎 붙이지 못하는데

깊은 아픔은 끝없이 내 창자를 짓누르네

천지가 다함이 있어도 시름은 다하지 않으니

진실로 병이 아님을 아는 것이 또한 깊은 병이네

 

오경의 닭 울음소리에 종소리도 따라 우는데

일어나 이불 안고 앉아서 날을 새우네

아침이 온다고 해서 시름이 사라지는 것 아니니

시름은 밤의 어두움으로 인해 더욱더 깊어지네

 

1482년 겨울에 사랑하던 부인이 죽자 애도의 마음으로 쓴 글이라고 한다. 시에 나오는 '깊은 아픔'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인간이 살면서 겪는 슬픔과 애통 중에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이나 죽음만 한 게 없을 것이다. 그밖에 소소한 상실이나 슬픔은 얼마나 부지기수인가. 인생에서 온갖 슬픔은 파도가 되어 끊임없이 밀려오고 또 밀려간다.

 

이 시에는 '시름'이 여러 차례 나온다. 선생의 시름은 꼭 부인의 죽음만은 아닐 것이다. 번민과 시름으로 잠 못 이루는 선비의 심정이 이 시에 담겨 있다. 천사만려(千思萬慮)는 시대를 아파하는 지성인이 감내해야 할 몫인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은 오로지 재미와 즐거움을 강조한다. 친구들 단톡방 대화의 대부분은 모여서 먹고 마시며 어디 구경 갔다 온 내용으로 가득하다. 아니면 한풀이식 저급한 정치 뒷담화든가. 우리는 늙어갈수록 점점 조무래기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상의 아기자기한 소확행과 함께 잠 못 드는 밤의 깊은 시름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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