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에서 불행과 행복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숱한 불행과 드문 행복이 불규칙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믿었던 친구의 배신, 타인에 대한 집착, 서로에 대한 오해 등 관계에서 오는 불행. 아픈 몸, 경제적 어려움, 불규칙한 생활, 밥벌이의 고단함, 일상의 권태 등 상황이 주는 불행. 걱정, 불안, 질투, 증오, 두려움, 죄책감, 자기 연민 등 온갖 감정이 일으키는 불행. 하다못해 날씨가 더워도, 길이 막혀도, 주위가 시끄러워도 삶은 괴롭다. 불행할 조건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서 인생의 기본값이 불행일 것 같은 때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불행 때문일까? 불행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은 행복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다. 많은 부를 쌓았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 큰 인기를 누리지만 공허감에 시달리는 사람,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았지만 건강을 잃은 사람, 막대한 권력을 지녔지만 불안에 떠는 사람,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웃음을 상실한 사람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불행과 행복은 함께 존재하지만 따로 작용하는 삶의 질서다. 불행은 행복을 방해하는 걸림돌도, 가로막는 장애물도 아니다. 이 둘은 독립된 개념이자 별개의 문제이며 서로 혼합되지도 상쇄되지도 않는다. 횟수와 밀도만 다를 뿐 인생에는 불행한 시기와 행복한 시기가 각각 존재한다.
행불행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라서 계량화하거나 정형화되기 어렵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불행과 달리 행복은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행복을 끌어안는 나름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눈앞에 직면한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불행할 요소를 없애려고 하기보다 주어진 행복에 집중하는 자세, 멀리 있는 이상을 좇는 것에 앞서 현재 내 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힘들고 고달픈 하루하루에 있어 우리는 내일, 다음에, 나중에, 언젠가를 기약하며 행복을 뒤로 미룬다. 그러나 행복을 누릴 완벽한 때란 오지 않는다. 지금만이 삶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무대이고, 행복을 체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행복의 비결, 행복의 조건, 행복의 정석, 행복의 지름길은 따로 없다.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고 선택하는 것이며 체험하는 것이다.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끝내 행복할 수 없음을. 불행한 일들은 지긋지긋하게 겪었다. 이제 행복할 시간이다.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요사이 우지현 작가의 <혼자 있기 좋은 방>을 보고 있는데 주옥 같은 글이 많다. 행복을 말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새로운 깨우침을 얻고 있다. 특히 '불행은 행복의 걸림돌이 아니다'는 말을 되뇌어 보게 된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면 불행은 물결치는 바다와 같지 않을까. 배가 흔들리지 않을 때가 없듯 불행은 인생의 기본값으로 이미 장전되어 있다. 불행은 탓할 것이 아니라 껴안고 같이 가야 한다. 배가 요동친다고 투덜댈 수만은 없는 일이다.
'불행과 행복은 함께 존재하지만 따로 작용하는 삶의 질서'라는 말도 새겨두고 싶다. "이것만 아니면 행복해질 텐데"가 아니라, "이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할 수 있다"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어떤 상태에 있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리고 행복은 내가 만들어가는 노력이다.
지은이는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소한 일상이 온통 고맙다. 이제는 삶이 얼마나 힘겹고, 자주 혼란스럽고, 수시로 아플 수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어떤 밤에 흐느껴 울고, 맨땅에 허우적거리고, 누군가를 미워했다가 속으로 미안해하고, 기대했다가 금세 실망하고, 마음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쉽게 흥분해서 실수하고, 이따금 세상을 원망하고, 상처 주고 싶다는 못된 마음을 품고, 다짐한 뒤 실행하지 않고, 무의미한 한숨을 내뱉고,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끝없는 우울함에 침잠해 들어가고,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룬다. 그렇게 나는 때론 비겁하고, 때론 지질하고, 때론 아프게 표류중이지만 그래도 이런 내 삶을 사랑하며, 아니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힘들지만, 그래서 다행히 불행하지는 않다.
체념도 허영도 없이 말하는데 '어떻게든 되겠지'가 삶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신조다. 인생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고 그것들을 느끼든 느끼지 않든, 모든 일은 어떻게든 지나가게 되어 있다.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도 아파할 필요도 없다. 그저 시간을 견디고 오늘을 살아가면 된다.
이제는 안다. 수선스럽지 않고 담백하게 삶을 긍정할 수 있다면, 내가 나를 속이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인생을 아름답게 영위할 수 있음을. 또 그렇게 살아야 할 땐 그냥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이것이 삶이 내게 준 그럭저럭 긍정적인 변화다."
나는 값싼 행복팔이를 경멸한다. 말초적인 감각의 만족을 행복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이미 속화되어 버린 행복이라는 말은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 한다. 갈증의 일시적인 해갈은 행복이 아니다. 나는 삶의 태도와 연결되지 않은 행복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지은이는 '어떻게든 되겠지'가 자신의 신조라고 한다. '체념', '그럭저럭' 같은 말도 보인다. 잠잠할 날 없는 인생길을 우리는 그저 시간을 견디고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수선스럽지 않게 삶을 긍정하는 길임을 나도 공감한다. 그 과정에서 잔잔하게 우러나는 자족이 곧 행복이 아니겠는가. "이제 행복할 시간이고, 우리는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