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고주망태가 되다

샌. 2022. 8. 6. 10:27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나갔다가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왔다. 점심에 중국집에서 배갈을 들이킨 게 화근이었다. 이과두주가 여러 병 놓여 있던 것만 기억날 뿐 그 뒤로는 필름이 끊어졌다. 저녁에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정신이 잠깐 돌아왔다. 기사분한테 비닐봉지를 얻어 토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떡하면 좋지?" 라면서 친구들이 택시를 잡아 태우던 장면이 어렴풋하다. 술자리 처음 30분 정도만 기억날 뿐 나머지 여덟 시간은 어떻게 보냈는지 안갯속이다. 택시에서 내려서는 바닥에 쓰러졌고 아내가 데리러 나와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옛날 가락이 또 나온다고, 다음날 아내로부터 지청구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이젠 체력적으로 술을 감당하지 못하겠다. 절제할 의지력도 부족하다. 적당한 한두 잔이 안 되는 게 문제다.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 방법밖에는 없다. 다시 단주(斷酒)를 결심한다. 늙어서 술 취해 비틀거리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꼴을 상상하면 알코올이 주는 위안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날 어떤 추태를 보였을지 뻔한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서른 시간 넘게 침대에 누워 있었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그날 밤에 찍힌 사진 한 장이 있다. 땅에 쓰러져 있던 와중에도 휴대폰을 꺼내 올려다보이는 아파트를 찍었던가 보다. 이게 내 마지막 대취(大醉)의 흔적이기를, 술의 힘을 빌리려는 철부지 짓을 다시는 하지 않기를. 이걸 극복 못하면 사람 되기는 틀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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