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텃밭이 차려준 점심 식탁

샌. 2022. 7. 31. 15:34

태풍 송다가 올라오면서 오후부터 비를 뿌린다기에 오전에 텃밭에 나가 배추와 무를 심을 이랑 정리를 했다. 거름을 듬뿍 주고 흙과 고르게 섞어 주었다. 짙은 구름이 끼고 간간이 비가 뿌렸지만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일은 고돼도 기분은 상쾌했다.

 

아내는 상추, 아욱, 고추, 가지, 부추, 옥수수, 호박잎, 깻잎, 토마토 등 땅이 주는 선물을 거두었다. 덕분에 점심 식탁이 풍성해졌다.

 

 

돼기고기와 막걸리를 제외하면 모두가 우리 텃밭에서 나온 재료들이다. 어설픈 농사 흉내에 작물은 시원찮아도 밭에서 금방 따 온 싱싱함이 주는 맛은 역시 다르다. 땅을 빌려준 이웃에도 감사하고, 이런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신 자연에도 감사한다.

 

어제는 넷플릭스로 영화 '모리의 정원'을 봤다. 30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신의 마당 정원에서 보낸 일본의 괴짜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1880~1977)의 삶을 그린 영화였다. 잠깐의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해 안달한다. 그러나 모리에게는 손바닥 만한 정원이 곧 우주였다. 그 안에서 자라는 생물을 관찰하고 함께 호흡하며 모리는 우주와 한 몸이 되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간 모리를 보면서 너무나 속화(俗化)된 내 모습이 비교되어 부끄러웠다.

 

영화에는 모리가 땅에 모로 누워서 종일 개미를 관찰하는 장면이 나온다. 개미라는 미물이 그에게는 신비한 우주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우리는 텃밭을 하면서 개미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참고 참다가 급기야는 개미 약까지 뿌렸다.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모리의 천진함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떠난 낭만의 유희 같은 속성을 본다. 모리의 뒤에서는 집안 살림을 떠받쳐야 하는 아내의 노고가 있었다. 어쨌든 '모리의 정원'의 개미는 나를 뜨끔하게 했다. 오늘 내가 맛있게 먹은 점심 식탁의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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