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코로나에 걸리다

샌. 2022. 8. 12. 18:35

코로나에 걸린 누적 확진자가 2천만 명이 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숫자까지 더하면 국민의 반 이상이 코로나에 걸린 셈이다. 주변을 봐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 비율이 반이 넘는다.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만남이 되어 가고 있다.

 

나도 이번에 코로나에 걸렸다. 지나칠 정도로 몸을 사리며 지냈지만 한 순간의 방심에 무너졌다. 지난주 목요일에 서울에 가서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고 개차반이 되었다. 온갖 추태를 부리다 집에 들어왔으니 코로나가 가만 뒀을 리 없었다. 다다음날부터 기침이 나면서 증상이 나타났다. 나의 '코로나 일기'다.

 

- 첫째 날(8/6)

오후부터 몸이 나른하고 목이 칼칼하면서 잔기침이 나다. 에어컨 바람 탓인 줄 알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다. 딸과 손녀들이 찾아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접촉 없이 방안에서 지내다.

 

- 둘째 날(8/7)

아침에 일어나니 증상이 예사롭지 않다. 아내에게 코로나일지 모른다고 말하니 집안이 졸지에 비상사태에 들어가다. 하필 손주를 비롯해 온 가족이 다 모여 있는 때다. 코로나 검사 키트로 체크를 하니 코에서는 음성인데 목에서 양성이 나오다. 오후가 되면서 열이 오르고 기침이 심해진다. 가끔 가래도 나온다. 딸이 약국에서 사 온 해열제(이지펜)와 목기침약(쎄파렉신)을 먹다.

방에 완전히 격리되다. 연락은 휴대폰으로 하고 음식 전달도 감방에서 하는 식이다. 갑자기 허기가 져서 받는 즉시 폭풍흡입이다. 특히 당분이 당긴다. 몸의 면역체계가 침투한 적과 싸우자면 에너지가 필요한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자면 보급을 잘해줘야 한다.

그날 만났던 친구들에게 연락하니 다들 괜찮다고 한다. 그놈의 코로나는 나한테만 달려든 모양이다. 하필 코로나한테만 매력이 있어 보이면 어쩌란 말인가.

항생제 덕택인지 낮부터 열은 많이 내리다. 기침과 목 통증은 여전하다. 노곤하고 무기력한 느낌이 심해진다. 책을 보거나 블로그를 여는 것이 불가능하다. 침대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한다. 심한 비바람에 격렬하게 춤추는 창밖의 소나무도 구경한다. 계속 이어지는 비로 날씨가 덥지 않아 다행이다. PBA 팀리그가 열리고 있어 유일한 오락거리가 되어 주고 있다. 

격리된 독방 생활은 마치 종말 영화에 나오는 셸터 같다. 하지만 여기서는 인터넷으로 세상과 소통이 가능하다. 자연과 사회에서 완전히 차단된 셸터라면 인간은 과연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목 통증과 기침이 괴롭다. 소금물로 가글을 시작하다.

 

- 셋째 날(8/8)

밤새 기침에 시달리느라 잠을 설치다. 일어나니 머리가 띵 하고 몸 전체에 근육통이 나타난다. 어제 좋았던 컨디션이 다시 주저앉는다. 입맛도 없어진다. 다행히 극성이던 기침은 낮이 되니 잦아든다. 내일까지 견뎌보고 병원에 가보려 한다.

갈증이 생겨 물을 엄청 마신다. 무엇이건 몸이 요구하는대로 들어주면 된다. 바깥 풍문보다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현명하다. 점심에는 전복죽을 맛있게 먹다.

이왕 코로나에 걸린 몸이니 나는 상관없는데 걱정은 가족이다. 아내가 제일 밀접 접촉자였고 딸과 손주들이 있다. 그중 하나라도 걸릴까 봐 노심초사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무탈하다.

인터넷 뉴스는 폭우로 물난리가 난 바깥세상 소식을 전한다.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이 절로 나온다. 우리 옆 동네에서도 한 분이 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하늘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데려가지 않는다.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했다. 병이나 죽음 등 인생의 모든 것은 그저 복불복(福不福)인지 모른다.

 

- 넷째 날(8/9)

기침은 잦아드는데 목은 침을 삼킬 때마다 따끔거린다. 지금까지로 보면 심한 감기 정도 수준이다. 코로나 증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무증상인 사람도 있고 사망하는 사람도 있다. 걸려 봤자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얘기도 듣는다. 그런 말을 쉽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코로나는 꽤 질기고 지저분하다.

무기력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코로나는 증상도 증상이지만 심리적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 다섯째 날 (8/10)

일어나서 간단한 체조를 해 보다가 그만두다. 목이 따갑고 가끔 발작적으로 기침이 나오는 증상이 계속되다. 심해지지도 나아지지도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후유증을 남겨서 문제다. 코로나 환자 중 20% 정도가 후유증, 즉 '롱 코비드(Long Covid)'로 고생한다고 한다. 백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나는 3차까지 맞고 4차는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백신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의해 몸이 무력화되는 것을 보며 겸손을 배운다. 그동안 너무 기고만장하며 까불었다. 생물학적인 나이와 어른되기는 아무 상관이 없다.

 

- 여섯째 날(8/11)

인후통과 기침이 여일하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금방 실망이다. 이쯤 되니 지치면서 짜증이 난다. 가벼운 실내 운동이라도 해 보려 하지만 의욕이 없다.

첫째가 추어탕을 사 가지고 왔지만 얼굴도 보지 못하다.

그동안 지루하지 않게 하루를 보내게 해 준 PBA 팀리그가 끝나다.

 

- 일곱째 날(8/12)

오랜만에 맑은 하늘이 돌아오다. 방 안에 갇힌 나는 오늘도 같은 날의 반복이다. 일주일 정도 견디면 나갈 줄 알았는데 아직은 어림도 없다. 독감이나 감기는 하룻밤 자고 나면 전날보다 나아지는 게 눈에 뜨게 느껴졌다. 그런데 코로나는 그렇지 않다. 질기고 독한 놈이다. 잘못된 만남이 어디 너만이랴만은 이만큼 괴롭혔으면 됐으니 이젠 떠나가 줄 수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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