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 장의 사진(34)

샌. 2022. 8. 24. 10:33

 

'洛山寺記念 / 67. 7. 23'

올해가 2022년이니 55년 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장소는 낙산해수욕장의 의상대 앞이다. 앞줄 맨 왼쪽의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 나다.

 

그해 여름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면사무소 직원들과 이장분들이 피서 여행을 동해안으로 갔는데 아버지는 나를 동행시켰다. 나는 그때 중3이었고 막 여름방학에 들어간 참이었다. 고등학교 입시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때였지만 머리를 식힐 겸 바닷바람을 쐬고 오자고 아버지가 권했고, 나는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실소가 일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어떻게 어른들 가는 여행에 낄 생각을 했을까. 동료들 여행에 자식을 데리고 간 아버지도 그렇지만 졸래졸래 따라간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중3이면 가족끼리 여행을 하자고 해도 손사래를 칠 나이일 텐데 말이다. 55년 전의 사고방식이나 분위기는 지금과는 생판 달랐나 보다.

 

첫날 묵은 곳은 아마 속초였을 것이다. 숙소는 시내 여관이었는데 저녁에 다들 삼삼오오 무리지어 외출을 하고 나 혼자 여관방에 남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혼자 여관방에 남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른 일정은 어떻게 보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 사진이 없었다면 낙산사에 들린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당시에는 당연했는지 몰라도 지금 돌아보면 기묘한 여행이었다.

 

앞줄에 부채를 들고 있는 분이 아버지다. 사진에 있는 다른 분들도 이제는 대부분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중 한 분은 몇 달 전에 지병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뜨셨다. 저 당시 아버지 연세가 40대 중반인 걸 생각하면 시간 감각이 헝클어져 버린다. 지금 내 자식 또래가 아닌가. 세월 무상이 심금을 울린다.

 

우리는 모두 이 지상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존재다. 반짝 하고 생겼다 사라지는 물거품인지 모른다. 각자의 꿈과 욕망으로 분투하지만 모두가 신기루 같은 환상이 아닐까. 일렁이는 환영을 좇아 일희일비하면서 허락된 시간을 채운다. 인생은 깨고 나면 헛웃음을 짓게 되는 그런 꿈은 아닐까.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임스 웹이 찍은 수레바퀴은하  (0) 2022.09.14
좌파와 우파  (1) 2022.09.05
코로나 격리의 지루함을 달래준 두 영상  (0) 2022.08.20
코로나에 걸리다  (2) 2022.08.12
제임스 웹이 보는 우주  (0) 202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