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코로나 격리의 지루함을 달래준 두 영상

샌. 2022. 8. 20. 16:42

어떤 사람은 코로나로 격리되어 있을 때 그간 시간 여유가 없어 못 본 영화와 드라마를 실컷 봤다고 한다. 증상이 경미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러질 못했다. 머리가 띵 하고 의욕이 없으니 정신 집중이 필요한 독서나 영화 감상 따위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대신에 유튜브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영상을 봤다. 'Just for Laughs Gags'라는 캐나다 TV 프로그램인데 길거리에서 의외의 상황을 만들어서 놀라는 시민들의 반응을 보고 즐기는 내용이다. 캐나다식 몰래카메라인 셈이다. 길이가 3분 정도로 짧고 스피디하게 전개되어 보는 데 지루할 틈이 없다. 마지막에 몰래카메라를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이 특히 재미있다.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캐나다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선진국 국민의 여유와 품격이 느껴져서 부러웠다. 국가총생산만 높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 의식과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너무 치열하고 각박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9년 전 캐나다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난다. 캐나다는 무지개 사회라고 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지만 각자의 색깔을 존중하면서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는 뜻이다. 차별이 없다. 이 프로그램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졌다. 흑인과 동양인도 다수 나오지만 아무런 벽이 없다. 연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어린이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은 따뜻했다. 흔히 서양인을 개인주의자라고 하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캐나다는 이민 희망 국가에서 항상 앞자리에 위치한다.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한 번 살아보고 싶은 나라가 캐나다다.

두 번째로 많이 본 것은 미국 경찰이 도로에서 범죄 차량을 추격하는 영상이었다. 실제 상황의 쫓고 쫓기는 현장 화면들이어서 더욱 실감이 났다. 악착같이 도망가고 끈질기게 추격하는 장면이 스릴 있었다. 마지막에는 100% 붙잡히게 된다. 현실에서는 도주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미국 경찰의 직업의식은 대단하다. 도주 차량과의 정면충돌도 마다하지 않는다. 총기 소지가 허용된 나라라서 그런지 체포할 때는 굉장히 경계하며 조심스럽다. 매뉴얼을 꼭 따르는 것 같다. 하지만 범죄자가 수상한 행동을 보이면 바로 발포한다. 미국의 공권력 집행은 살벌할 정도다. 체포되는 사람을 보면 대다수가 흑인인 점도 흥미롭다.

만약 내가 미국에서 어떤 일로든 경찰의 추격을 받는 일이 생긴다면 난감할 것 같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섣부르게 행동했다가는 큰일날 지 모른다. 무조건 두 손을 들고 꼼짝하지 말아야 할까. 20년도 넘은 때였다. 퇴근하다가 신호 위반으로 교통경찰에게 적발되었는데 정지하라는 수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도망가 버렸다. 백미러로 사이렌을 울리며 쫓아오는 경찰차가 보였다. 교통이 번잡한 사거리에서 내가 통과하고 나자 신호등이 바뀌고 경찰차는 더 이상 따라오지 못했다. 만약 미국이라면 어땠을까.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만약 체포되었다면 인생을 망쳤을지 모른다.

캐나다의 몰래카메라와 미국 경찰의 추격 영상은 코로나 격리의 지루함을 덜어준 심심풀이 땅콩이며 마취제였다. 오늘 유튜브에 들어갔더니 화면에는 서양 사람의 웃는 얼굴과 달리는 경찰차 사진으로 가득하다. 며칠동안 몰두했으니 유튜브는 내 취향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살다 보면 이렇듯 옆으로 샐 때도 있어야겠지.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떠올린다면 오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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