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 그럴 때가 있다 / 이정록
시인이 올해 교직에서 명퇴를 하고 '이발소'를 개업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웬 이발소? "라고 의아해했는데 '이야기발명연구소'의 줄임말이란다. 그리고 명함의 직함은 '깎사'다. 역시 시인다운 작명이다.
이 시를 읽다가 내 뇌리에 박힌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오래 전 물리책에서 본 문장이다. "당신이 화단의 꽃을 꺾어 든다면, 저 아득히 먼 곳의 별이 흔들린다." 그때 이 말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려서 몇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은 채 기억하고 있다. 물리학자와 시인의 마음이 닿아 있는 부분이다.
인간이 왜 인간일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으며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아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기에 가슴을 치다가도 어디선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에 조심스러워지는 마음이다. 지금 나의 즐거움은 안 보이는 먼 곳의 누군가의 눈물과 이어져 있음을 아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잃으면 인간은 금수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우리는 무엇을 손에 넣었다고 환호하는지, 정작 중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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