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탕글탕 홀아비 손으로 키워낸 외동딸이
배가 불러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네 각다귀 놈과 배가 맞아
야반도주한 뒤 한 이태 소식 끊긴 여식
더러는 부산에서 더러는 서울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걸 보았다는 소문만 듣고 속이 터져
어찌어찌 물어 찾아갔건만
코빼기도 볼 수 없던 딸년 생각에
막소주 나발이나 불던 즈음일 것이다
호박잎 그늘 자박자박 디디며
어린것을 포대기에 업고
그 뒤에 사위란 놈은
백화수복 들고 느물느물 들어오는 것 같은 것이다
흐느끼며 큰절이나 올리는 것이다
마음은 그 홀아비 살림살이만 같아
방바닥에 소주병만 구르고 퀴퀴하구나
만월이여
그 딸내미같이 세간을
한번 쓰윽 닦아다오
부엌에서 눈물 흘리며 조기를 굽고
저녁상을 볼 그 딸내미같이
- 추석 만월 / 송진권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다. 심신이 편치 않아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더구나 추석 이틀 전에 허리가 결려서 닷새째 구부정한 채 지내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허리 굽혀 세수할 수 없을 정도로 근육이 아프고 힘을 쓸 수 없다. 한 손은 세면대에 받치고 다른 손으로 고양이 세수를 했다. 내려가겠다 작정했던들 어차피 갈 수 없었던 팔자다. 왜 갑자기 허리가 결리게 되었는지, 못 내려가는 신세와 노모에 대한 미안함이 겹친 내 마음의 정당방위가 아닌지 모르겠다.
명절 기간에 명절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명절 분위기가 더 쓸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추석 만월을 손잡고 바라보는 사람도 있겠지만,애써 외면하고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명절이나 무슨 기념일 같은 것,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로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심보 고약한 날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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