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누르자 전등 켜져 밝다
수도에서 더운물 찬물 잘 나온다
냉장고에 일용할 음식의 한 가족 살고
작동 즉시 전율 휘감는 음악
한 그루 나무에도
공생하는 새와 곤충들 있어
저들 숨쉬는 허파와 그 심장 피주머니
숙연하다
그람자 한 필 드리우는 구름과
지척에 일렁이는 바람 손님들
이즈음 왜 이런지 몰라
사는 일 각별히 소중한지 몰라
모든 사람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으로
준령 오르고 있으리
눈물 말리며 걸으리
그러한 이 세상 참 잘 생겼다고
왜 문득
가슴 움켜잡는지 몰라
- 일상의 행복 / 김남조
아침에 텃밭에 나가 고랑을 정리할 때 까맣게 생긴 곤충 한 마리가 뽑힌 풀 사이로 기어가고 있었다.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하찮게 보이는 미물이어서일까, 살아가려는 생명의 움직임이 더욱 애잔하면서 숙연했다. 더 높은 곳에서 보면 인간의 삶 또한 그렇게 보이지 않겠는가. 모두가 옹기종기 어울려 살아가는 한 세상이다.
거둬온 푸성귀로 차린 아침 식탁이 풍성했다. 밭에서 바로 따 온 터라 싱싱하고 맛났다. 이런 게 일상의 행복이 아니겠느냐고, 앞에 앉은 아내도 함박 미소를 지었다. 삶은 외롭고 우울하고 아프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눈을 돌리면 세상에 대한 외경과 감사, 생명의 신비가 반짝이며 빛나는 걸 본다. 가능하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에 주파수를 맞추며 살고 싶다.
김남조 시인은 90대 중반에 이른 원로 시인이시다. 여전히 시작(詩作)을 비롯해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시인은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평화와 행복, 감사의 메시지를 전해 주신다. 더욱 건강하셔서 황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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