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물어보았니
그 강변 땅 위의 별인 조약돌들에게
골재가 되고 싶으냐, 라고 물어보았니
달빛 고운 여울목에서 맑은 돌눈이 되어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고 싶니, 아니면
흙탕물 속에 수장된 병든 자갈눈이 되고 싶니, 라고
강변에서 볕에 마르는 탄탄한 몸이 되고 싶은지
물이끼 촉촉이 서린 서늘한 몸이 되고 싶은지
너는 물어보았니
그 강물 속 물고기들에게
버들치에게 꺾쇠에게 피리에게 물어보았니
흐르는 물살을 따라 어디까지 가고 싶은 여행이었는지
물어보았니 우웅우웅 하루에도 몇 번씩 스크루 갈퀴가
캐터필러처럼 불도저처럼 삽날처럼 강바닥을 헤집는
탁류 속에서 살고 싶은지, 상수원 맑은 물 속
조용한 빛화살촉들로 살고 싶은지 물어보았니
갑문 앞에서 줄지어 섰다 우르르 내쫓겨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난민들의 피난 행렬이 되고 싶은지
너는 물어보았니
그 실개천에게 계곡물들에게 물어보았니
당신은 어떤 길을 따라 돌돌돌 흐르고 싶은 영혼이냐고
당신은 어떤 여울목에서 소용돌이로 엎어져 뒹굴며
쿨렁쿨렁 쏟아져 울고 싶은 영혼이냐고
콘크리트 수조 속에 갇혀 썩어가는 물이 되고 싶은지
세상의 모든 정체와 지체를 밀고 흐르는
거센 급류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았니
실버들 선 돌방죽 길을 따라 흐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갈대숲 늪지를 따라 어떤 영혼의 정화를 꿈꾸었는지
물어보았니, 너는
그 땅들에게 그 땅의 흙눈들에게 물어보았니
그 땅에 살고 있는 지렁이 한 마리
여린 풀포기 하나, 감자 한 톨, 벼 한 포기에게
당신들의 가슴을 찢고 가르고 짓밟고
강제로 물고문까지 시켜도 좋겠느냐고 물어보았니
누군가의 직선을 위해 당신의 둥그런 가슴을 파헤쳐도 좋겠느냐고
콘크리트로 꽁꽁 숨 쉴 구멍을 막아도 좋겠느냐고
사지를 절단 내 지하에 파묻어도 좋겠느냐고
물어보았니, 너는
그에게 물어보았니
그 강물에 펑펑 사랑의 눈물을 보탠 연인들에게
그 강줄기 어느 한 끝에서 굽이 많은 삶의 이치를 집어들던 모든 생활 속 철학도들에게
그 강물에 또 하루치의 땀과 정성을 씻고 집으로 돌아가던 농부들에게
그 강변 모래톱에서 모래알보다 작아지던 이에게
그 강물에 작은 무 같은 종아리를 담그며
물 수(水) 나무 목(木) 쇠 금(金) 흙 토(土)를 배워가던 아이들에게
그 강변에 회한을 묻던 가난한 인생의 노년들에게
그 모든 벙벙한 가치는 얼마의 가치인지
너는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삼성, 엘지, 대우, 현대건설에게 물어보았니
다국적 물 기업, 땅값에 눈 먼 지주들
정권에 빌붙은 기생충 거머리들에게 물어보았니
얼마가 네 손에, 너희들 손에 쥐여질 수 있는지
저 썩은 정치공학도들에게, 다른 무엇이 문제가 아니라
제 자신이 문제의 본질인 문제투성이 사회학자들에게
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저 영원한 생명의 강을
수많은 파문과 피눈물을 삼키고도
좌절하지 않고 흐르는 이 역사의 강을
무수한 발원들의 교차이며 합인 기억의 강을
늘 새로운 생명이며 문화의 이 강을
나란히 줄 세우겠다는 그 저급한 꿈을
관광 상품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그 치졸한 상상을
저 평등한 바다로 나가면 어차피 만나게 될 강물들을
이렇게 빨리 격랑으로 만나게 해주겠다고
고작 화물선 몇 척 물류비 계산이나 하고 있는 그 천박한 머리로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그렇게 무너뜨리고 싶으면
노동자 농민 서민 도시빈민 실업자 비정규직들의 아픔 위에 도도히 선
저 흉악한 자본의 탐욕이나 무너뜨리렴
그렇게 뚫고 싶은 게 많으면
반백년 원한으로 막아선 저 분단의 철벽이나 뚫어주렴
그렇게 성장하고 싶으면 이제 그만 미국의 품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오렴
신자유주의 착취와 소외, 폭력의 세계화 대열에서 벗어나
씩씩하게 독립해보지 않으련
더 많은 평화를 흐르게 하는 역사의 대운하라면
더 많은 평등을 실어나르는 사랑과 인내와 연대의 대운하라면
그 누가 말리겠니
그 누구든 작은 손이나마
뜰 삽으로 내밀지 않겠니
- 너는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MB에게 묻는다 / 송경동
작년이었던가, MB가 시 낭송하는 걸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MB와 시 낭송은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MB가 시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지금도 생각되지 않는다. 시를 좋아하는데 무슨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MB에게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이 정권은 국민의 70% 가까이가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여전히 밀어붙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MB가 있다. 국민 다수가 찬성하고 일부가 반대해도 그를 설득하느라 애를 써야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이거늘 이 정권은 다수의 반대에도 마이동풍, 아랑곳없다. 임기 안에 반드시 마치겠다고 도리어 더욱 속도전이다. 왜 그리 서두르는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납득이 안 된다. 더구나 4대강 사업은 환경, 생명, 국민 정서, 또 우리 미래의 삶과 직결된 문제가 아닌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이 시는 강의 죽음에 대한 격문이다. 마치 나라를 빼앗기고 통곡하는 애국지사의 목소리 같다. 너무 지나친 연상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 시에 나오는 ‘너’에서 매국노 이완용을 떠올렸다. 이 시를 4대강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팔매질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우리 삶과 사고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변해야 지도자도 변한다. 환경을 사랑하는 지도자는 환경을 사랑하는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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