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혜자는 엄마 이름. 귀가 얼어 톡 건들면 쨍그랑 깨져버릴 듯 그 추운 겨울 어데로 왜 갔던고는 담 기회에 하고, 엄마를 가져 싸아한 진통이 시작된 엄마의 엄마가 꼬옥 배를 감싸쥔 곳은 기차 안. 놀란 외할아버지 뚤레뚤레 돌아보니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들뿐이었는데 글쎄 그게, 엄마 뱃속에서 물구나무를 한번 서자,
으왁!
눈 휘둥그런 아낙들이 서둘러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자 남정네들 기차 배창시 안에서 기차보다도 빨리 '뜨신 물 뜨신 물' 달리기 시작하고 기적소린지 엄마의 엄마 힘쓰는 소린지 딱 기가 막힌 외할아버지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인데요, 아낙들 생침을 연신 바르는 입술로 '조금만, 조금만 더어' 애가 말라 쥐어트는 목소리의 막간으로 남정네들도 끙차, 생똥을 싸는데 남사시럽고 아프고 춥고 떨리는 거기서 엄마 에라 나도 몰라 으왕! 터지는 울음일 수밖에요.
박수 박수 "욕 봤데이." 외할아버지가 태우신 담배꽁초 수북한 통로에 벙거지가 천정을 향해 입 딱 벌리고 다믄 얼마라도 보태 미역 한 줄거리 해 먹이자, 엄마를 받은 두꺼비상 예편네가 피도 덜 닦은 손으로 치마를 걷자 너도나도 산모보다 더 경황없고 어찌할 바 모르고 고개만 연신 주억였던 건 객지라고 주눅든 외할아버지 짠한 마음이었음에랴 두말하면 숨가쁘겠구요. 암튼 그리하야 엄마의 이름 석 자는 여러 사람들의 은혜를 입어 태어났다고 즉석에서 지어진 것이라.
多惠子.
성원에 보답코자
하는 마음은 맘에만 가득할 뿐
빌린 돈 이자에 치여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엄마 다혜자씨는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끓어오르는 부아를 소주 한잔으로 다스릴 줄도 알아 "암만 그렇다 캐도 문디,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여장부지요
기찬,
기-차- 안 딸이거든요.
- 기찬 딸 / 김진완
오늘은 재미있는 시 한 편을 골랐다. 급박했던 기차 안 풍경이 정말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시인의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그러나 단지 재미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따스한 정(情)과 질긴 생명력이 담겨 있어 이 시를 살아있게 한다. 그 시대는 가난하고 투박했지만 대신 따뜻하고 인정이 넘쳤다. 아마 요사이 같았으면 승무원을 부르고 119를 부르는 게 우선이지 않았을까? 다혜자(多惠子)라는 작명도 재미있으면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러나 시인의 엄마 다혜자 씨는 도리어 풍요의 시대에 더 힘겹다. 그래도 절대 쓰러질 것 같지는 않다. 그 누구도 흉내 못 낼'기-차- 안딸'이 아닌가.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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