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팔죽시(八竹詩) / 부설거사(浮雪居士)

샌. 2010. 9. 4. 09:26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粥粥飯飯生此竹

是是非非看彼竹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 八竹詩 / 浮雪居士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


7 세기 신라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있었다. 그는 서라벌에서 출생해서 20세 때 출가를 했다. 수도를 위해 명산대천을 순례하던 중 김제에서 묘화(妙花)라는 아가씨를 만나 환속했다. 그리고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았다. 부설거사는 뒤에 내변산 쌍선봉 중턱에 월명암(月明庵)을 짓고 수도에 전념하다가 도통했다. 그리고 부인과 두 자녀도 뒤따라서 득도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이 시는 자유자재한 도통의 경지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그는 일체의 걸림이 없는 바람이었고, 조금의 막힘이 없는 장강(長江)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승려의 신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인과의 사랑이나 결혼에도 구애받지 않았을 것이다. 부인과 두 자녀도 자신이 걸은 길을 갔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남자는 없지 않나 싶다.


시에 나오는 ‘竹’은 이두 식으로 풀어 ‘대로’로 읽는다. 사람들 근심걱정의 9할 이상이 쓸데없는 거라고 하지 않는가.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부설거사가 주는 메시지를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어깨에 멘 무거운 짐을 이젠 내려놓으라고,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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